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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家의 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택배를 보냅니다.” 양수현 구호사업팀 주임

2019.07.17

[희망家의 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택배를 보냅니다.” 양수현 구호사업팀 주임

 

 


"전화만 받다가 일과가 끝날 정도였어요. 하루 200통이 넘는 전화가 한 달 내내 이어졌죠."

 

 

 

양수현(31) 구호사업팀 주임은 지난 4월을 ‘입사 이래 가장 정신없었던 시기’로 기억한다. 월초에 발생했던 강원 산불이 직접적인 이유였다.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화마(火魔)’에 국민들은 소스라치게 놀랐고, 이는 곧 다양한 도움의 손길로 이어졌다. 전국각지에서 십시일반 모인 성금이 350억 원을 훌쩍 넘었고,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물품을 보내오는 사람들도 줄을 이었다.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이하 희망브리지)에서 구호물품의 검수‧관리를 전담하는 양 주임이 진땀나는 4월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잠깐 화장실이라도 다녀오면, 책상 가득히 메모가 붙어있을 정도였어요. 성금을 비롯해 물품으로도 도움을 주고 싶다는 분들이 그만큼 많았단 얘기죠.”

기계적으로 응대만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4명 중 1명은 중고품, 식품류, 패션소품 등 ‘불가’ 품목을 제시한다. 그럴 땐 규칙 안내와 함께 완곡한 거절 의사를 밝혀야 하는데, 이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기부자의 선의와 재난 피해자의 상처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하는 자리, 하지만 좋은 소리보단 싫은 소리를 더 많이 들을 수밖에 없는 양수현 주임을 희망브리지 본사에서 직접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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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현(사진) 희망브리지 구호사업팀 주임

 

 

 

 

‘세월호’가 이어준 특별한 인연의 끝에서

 

 

 

어느덧 입사 5년차의 양수현 주임. 경영학과 독일어를 전공했지만 원래 꿈은 상품기획자였단다. 직업 선택의 기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었는데, 그중에서도 사람들의 숨겨진 니즈를 파악해 상품을 기획하는 일에 가장 큰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실제로 대학 졸업 후 2년 여 동안 기획 분야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양 주임과 희망브리지는 ‘어떤 사건’을 계기로 인연을 맺었다. 2014년 4월, 대한민국 전체를 비통함에 몰아넣었던, 일명 ‘세월호 참사’다. 슬픔에 찬 국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온정의 손길을 보냈는데, 당시 이 모금을 법정구호단체인 희망브리지가 주도했다. 그런데 양수현 주임이 우연한 기회로 해당 성금에 대해 기부금 영수증을 발행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던 것이다. 양 주임은 “원래 한 달만 하기로 했는데, 성금이 너무 많이 몰려서 두 달이나 이어지게 됐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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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여의도공원 문화의 마당에서 열린 ‘2018 서울 안전한마당’ 부스에서 참관객을 맞고 있는 양수현 주임

 

 

 

 

두 달 간의 ‘일탈’을 마치고 취업준비생의 신분으로 돌아온 양수현 주임. 하지만 길지 않은 그 시간은 양 주임에게 어떤 울림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 전까지 제게 기부란 건 굉장히 특별한 것이었어요. 돈 많은 사람들이 통 크게 쾌척하고 뉴스에 나오는, 그런 것이었죠. 당연히 해본 적도 없었고요. 그런데 두 달 동안 정말 수많은 사람들의 성금을 받으면서, 그 생각이 송두리째 바뀌었어요. 친구들끼리 모았다는 몇 천원, 꼬마가 털어온 저금통 같은 것들이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이런 인식의 변화는 양 주임의 취업 노선에도 영향을 미쳤다. 영리기업만 바라봤던 시야가 조금씩 넓어진 것. 자연스레 공익 단체나 비영리기구 등도 취업 체크리스트에 포함됐다. 그중에서도 희망브리지는 일 순위였다. 양 주임은 “구호단체라는 곳은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 무겁게 일할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내가 느낀 희망브리지는 여느 회사 못지않게 밝고 편한 분위기였다”고 회상했다. 이후 2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무렵, 희망브리지 홈페이지에 드디어 채용 공고가 올라왔고 양 주임은 주저하지 않았다.

“조금 돌아오긴 했지만… 돌이켜 보면 제 직업 선택의 기준에 맞춤옷처럼 딱 맞는 곳이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이만큼이나 해내는 곳이 어디 있겠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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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기부와 공익단체에 대한 인식이 바뀐 양수현 주임은 결국 희망브리지의 일원이 됐다.

 

 

 

 

“구호품… 내가 받을 수도 있는 물건이라 생각해주세요.”

 

 


2015년 운명적으로 희망브리지에 입사한 양수현 주임은 이후 경영지원팀과 기관 부속 ‘재난안전연구소’를 거치며 구호활동가로서의 경험치를 차곡차곡 축적했다. 특히 연구소에서 진행했던 조사연구 프로젝트와 해외구호사업은 이론적 토대를 쌓고, 실무경험을 익히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연구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관련된 책도 많이 읽었고, 방글라데시, 미얀마, 네팔 등을 돌며 살아있는 사업 현장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양 주임은 “이재민들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던 시간들”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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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의 해외사업을 통해 재난 피해자들을 직접 만났던 양수현 주임. 양 주임은 “피해자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던 시간”이라고 했다.

 

 


현재 소속인 구호사업팀으로 옮긴 지는 이제 3년차, 구호사업팀은 기관의 크고 작은 사업을 기획하는 중추이자, 실제 ‘액션’을 도맡는 행동대장의 역할을 한다. 재난이 일어나지 않았을 때는 대기업의 CSR활동을 기획‧수행하고, 재난이 발생하면 담당 지자체와 발 빠르게 연결해 복구와 지원에 앞장선다.

특히 양 주임이 맡고 있는 구호물품의 경우엔, 재난 발생 후 서너 시간 안에 지원 여부와 물품 종류가 결정되어야 할 만큼 급박하게 돌아간다. 통상 대형 재난 소식을 접한 희망브리지에서 제공하는 구호물품은 크게 세 종류로 나뉜다. 첫 번째는 정부‧지자체 차원에서 제작해 보관하는 재해구호물품세트(응급/취사), 두 번째는 법정구호단체인 희망브리지가 평소 기부나 구매를 통해 비축해둔 구호물품(모포나 위생용품 등), 그리고 희망브리지와 구호물자에 대한 MOU를 체결한 기업들이 재난 발생 시 긴급 공수하는 물품 등이다. 양 주임은 “유통기한이 짧은 식품류는 보관해둘 수가 없기 때문에 편의점 기업들과 협약을 맺고, 필요 시 재난 지역 인근의 편의점에서 지원하는 식으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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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브리지 함양물류센터에 구비되어 있는 재해구호품들. 모두 같은 창고에 보관되어 있지만 성격은 조금씩 다르다. 왼쪽은 지자체에서 제작한 것이지만, 오른쪽은 기업의 기부를 받아 구비되어 있는 것이다.

 

 

 

이번 강원 산불의 경우, 상황 발생과 동시에 고성·속초·동해·인제 지역 임시주거시설에 희망브리지 응급구호키트 850세트가 우선적으로 보급됐다. 의류 및 침구류, 화장품 등 기업의 기부 물품들도 잇따랐다.

 

이 같은 물품들은 재난 발생 한 주 만에 일사천리로 지원이 마무리됐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후에는 매스컴을 통해 사고 소식을 접한 일반 시민들이 “나도 물건을 보내고 싶다”며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이 때,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을 연결해야 하는 역할을 오롯이 양수현 주임이 맡는다. 그녀의 4월을 독차지했던 바로 그 업무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너무 앞서다 보니, 중고품이나 불필요한 물건을 전달하려는 경우도 많아요. 저 역시 뭐라도 주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해요. 하지만 피해 이웃들은 갑작스런 재난으로 참담한 심정인데, 누군가 헌 옷과 헌 신발을 준다면 더욱 큰 충격과 자괴감을 느끼실 수도 있거든요. 이런 매칭을 부드럽게 한다는 게 참 어려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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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주임은 “받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 역시 주는 사람의 몫”이라고 강조한다.

 

 

 

강원 산불의 기부 물품 모집은 지난 5월 31일에 모두 마무리됐다. 수십만 점에 달하는 물품들은 현재 고성·속초·동해·인제 4개 지역에 지원되었다. 양 주임은 “산불 피해 현장으로 보낸 물품만 20만 점이 넘는다”고 귀띔했다. 이제는 그 방대한 양의 물품 가격을 확인하여 기부금 영수증을 처리하는 일이 남아있다. 기부문화 활성화를 위해선 받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라고 한다.

 

상품 기획자의 꿈 대신, 물품 전달자로서의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양수현 주임. 앞으로도 기부자와 피해 이웃 사이의 ‘오작교’ 역할을 잘 해내겠다고 다짐하는 그녀의 마지막 당부가 마음에 와 닿는다.  

 

“재난 피해 이웃들은 특별히 어려운 처지의 분들이 아니에요.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인데, 갑작스럽게 재난을 당하신 것뿐이죠. 다시 말하면 우리도 그 상황을 겪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피해 이웃의 마음을 고려하면서, 피해 상황에 따라 필요한 물품을 연결하는 데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희망브리지 # 강원산불 # 구호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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