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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eam in Screen] 한계에 도전하는 사람들, 가을특집 산악재난 명작선 vs. <버티컬 리미트>

2020.10.12

[Scream in Screen] 한계에 도전하는 사람들,

가을특집 산악재난 명작선  vs. <버티컬 리미트>

 

 

 

바야흐로 산행의 계절입니다. 전국의 명산들이 알록달록 새 옷을 갈아입은 단풍과 살랑살랑 불어오는 산들바람을 앞세워 등산객들을 유혹하죠. 특히 올해는 여름 내 장마와 태풍 등 습한 기후로 고생한데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인해 ‘코로나 블루’까지 겹치며 힐링 산행을 원하는 등산객들의 발길이 더욱 활발합니다. 하늘이 부쩍 높아진 가을철, 산에 오르면서 상쾌한 공기를 마시고 아름다운 경관을 구경하는 것은 분명 일상의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한꺼번에 많이 모이는 곳에는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죠. 가을 산행 역시 여러 가지 위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불의의 낙상이나 추락부터, 척추‧관절의 부상이나 해충‧산짐승에 해를 입는 경우도 있는데요. 행정안전부가 지난 10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를 ‘가을철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집중 신고기간’으로 정해 놓은 것도 이런 연유입니다. 가을 행락철에는 야외 활동이 늘어나면서, 산을 찾는 등산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늘 산악 안전사고에 유의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본 콘텐츠에서는 가을철 산행의 안전 의식을 되새기고자 산악 재난을 다룬 영화 두 편을 소개하려 합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험한 산봉우리라고 불리는 ‘K2’, 이곳을 무대로 인간의 도전과 한계, 그리고 삶의 의미를 전하고 있는 영화 와 <버티컬 리미트>입니다.

  

 

※ 본 콘텐츠는 영화 와 <버티컬 리미트>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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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등산의 계절인 동시에 산에서의 안전에 각별한 유의를 요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죽음과 마주한 순간, 살아있음을 실감하는 아이러니


 

와 <버티컬 리미트> 두 영화는 같은 무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바로 에베레스트(8848m)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로 알려진 K2(8611m)라는 산이죠. K2는 히말라야 14좌 중에서도 위험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곳입니다. 너무 위험해서 사람의 동계 등정을 단 한 번도 허용하지 않고 있는데도, 공식 집계된 등정 사망률이 무려 23.24%에 이를 정도죠. 산악인들은 이렇게 위험한 곳을 왜 정복하려 하는 것일까요? 1991년에 개봉한 는 그 답을 제시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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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포스터(사진: 네이버 영화)

  

 

영화의 주인공은 테일러(마이클 빈 扮)와 해럴드(맷 크레이븐 扮)입니다. 오랜 친구이지만 성향은 극명하게 갈리죠. 테일러는 이기적이며 자유분방한 변호사로, 해럴드는 보수적이지만 가정적인 교수로 나옵니다. 성격 차이만큼 의견대립도 심해 티격태격하기 일쑤지만, 아주 오랜 세월 그 둘의 우정을 이어주었던 매개체가 있었으니, 바로 산입니다. 테일러는 성취욕의 발현으로, 해럴드는 일상으로부터의 탈피를 위해 산에 올랐지만, 이유야 어찌됐든 둘은 함께 암벽을 오르내리며 실력 좋은 산악인으로 성장해가죠.

 

 

그런 그들에게 어느 날 운명의 장난처럼 K2 탐사대에 합류할 기회가 생깁니다. 자신의 일과 가정 등 포기해야 할 것들이 많았지만 둘은 평생을 좇았던 히말라야 정상 정복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합니다. 그리고 전대미문의 고지 8,000m를 향한 도전이 시작되죠. 이후 영화가 그려내는 것은 인간의 치기에 대해 산이 던지는 묵직한 답변입니다. K2는 그들이 상상하던 것 이상으로 험난했죠. 지속적으로 던져지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함께 등반하던 대원들의 부상과 조난, 사고가 이어지며 대원들의 수는 서서히 줄어만 갑니다. 결국 주인공 테일러와 헤럴드만이 외롭고 고난 사투를 이어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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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정상에 등극한 테일러와 헤럴드(사진: 네이버 영화)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을 맴도는 질문이 있습니다. ‘도대체 왜 저렇게까지 사서 고생을 하는 거야?’라는 의문이죠. 두 주인공이 정상을 정복하고 내려오는 길에 절벽에서 추락하여 사경을 헤매는 지경에 이르면, 그 궁금증이 절정에 이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장면에서 테일러가 직접 질문에 대한 답을 말해주죠.

 

 

 

“난 평생을 이기적으로 살아왔어. 내 일은 거짓말과 협상과 악당들과 거래지. 하지만… 너와 산에 오르면 고상함을 찾을 수 있었어. 

평생 이기주의자로 살다 가긴 싫어. 나도 좀 고상해지고 싶다고.”

 

 

이들에게 산은 자신을 ‘진짜’로 만들어주는 무대와 다름없었습니다. 가정적이며 안정적인 삶을 추구했지만, 실제론 그런 ‘평범’을 벗어나고 싶었던 해럴드는 험난하고 고단한 산행을 통해 오히려 삶의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매사에 ‘진취적으로 자아를 성취했노라’는 가면을 썼던 테일러는 산을 통해 잠시나마 이기적이고 속물적인 자신의 가면을 벗어버릴 수 있었던 것이죠.

 

 

물론 일반인들의 시각에선, 이들의 열정과 이들이 느끼는 희열, 이를 위해 감수해야 하는 고난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산’을 다른 대상에 대입해서 영화를 본다면, 어렴풋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일상에 찌든 우리가 가면을 벗고 자유로워지는 바로 그 순간을 말입니다. 최대한 담담하게 이들의 한 걸음 한 걸음을 따라가는 영화의 연출이 더 돋보이는 것도 그래서겠죠.



극한의 상황에서 선택의 무게를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



K2봉을 다룬 또 다른 수작 <버티칼 리미트>의 원제 ‘Vertical Limit’는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수직 한계점을 의미합니다. 산악인들에게는 ‘지옥’의 의미로도 일컬어지죠. 영화는 이런 수직 한계점에 도전하는 이야기이자, 한계점에서의 선택에 대해 조명하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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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버티컬 리미트>의 포스터(사진: 네이버 영화)



영화는 첫 장면부터 극단적인 상황에서의 선택을 강요합니다. 유명한 산악인 로이스는 아들 피터(크리스 오도넬 扮), 딸 애니(로빈 튜니 扮)와 암벽 등반을 하던 도중, 동료의 실수로 한 로프에 5명이 매달리는 처지에 처합니다. 실력있는 산악인이었던 로이스는 이 상황의 위험성을 즉시 알 수 있었죠. 산악용 자일(seil)이 견딜 수 있는 중량은 어른 두 명 정도, 아버지는 자신을 희생해 자식들을 살리고자, 로프를 끊으라고 강요하죠.


로프를 끊는다는 건 자신의 손으로 아버지를 죽이는 것이란 걸 알고 있는 피터… 삶과 죽음의 선택을 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 피터는 결국 로프를 끊고 자신과 여동생의 목숨을 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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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체절명의 순간, 당신의 선택은?(사진: 네이버 영화)

3년 후 피터와 애니는 아버지를 보낸 죽음의 계곡, 히말라야에서 다시 상봉합니다. 부유한 사업가가 협찬하는 히말라야 등정 이벤트가 열리는 무대에서 피터는 사진작가로, 애니는 다큐멘터리 팀 일원으로 등반대에 합류하게 된 것이죠. 하지만 이 둘의 사이는 서먹해진지 오래입니다. 애니는 아버지를 그렇게 보낸 오빠의 행동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죠.

이후의 이야기는 산악 재난영화의 클리셰를 따라갑니다. 날씨 등 상황이 좋지 않은 가운데, 등반을 강행하려는 무리와 이를 만류하는 무리의 실랑이가 이어지고, 결국 무모한 일정이 강행되죠. 등반과 동시에 히말라야는 자신의 방식대로 인간들을 환영합니다.

눈보라를 뿌리며 서서히 포효하는가 싶더니, 피부를 파고드는 영하 67도의 강추위로 대원들을 에워싸죠. 시야를 가리는 구름과 안개로 한 치 앞도 제대로 구별하기 힘든 상황. 대원들은 하나하나 산의 재물이 되어 사라지고, 애니를 포함한 3명만이 깊은 골짜기에 빠집니다. 등반에 참여하지 않았던 피터가 동생을 구하기 위해 구조대를 구성해 폭풍의 눈 속으로 들어가며 K2 정복을 향한 본격적인 사투가 시작되죠.

극한 상황에서 선택을 강요하는 영화답게, 영화상에선 수많은 선택의 순간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의 순간에서 인간의 이기심과 희생정신이 교차하죠. 자신을 구하기 위해 타인의 로프를 잘라 내거나,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주사약을 혼자 독차지하는 선택이 있는가 하면, 구조를 위해 사지로 뛰어 들거나 다른 이들의 목숨을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선택도 있죠.

어떤 것이 최선의 선택인지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수직한계점이란 극한의 상황에서 내리는 선택이란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죠. 결국 영화 <버티컬 리미트>는 선택 그 자체가 아니라, 선택에 대한 책임감에 대한 얘기입니다. 거대한 자연 앞에 나약할 대로 나약해진 인간의 선택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 선택에 대한 결과 역시 스스로 짊어져야 하는 것이니까요. 영화에서 등장인물들이 험난한 여정에 오르는 표면적 이유는 히말라야 등정 이벤트에 참여하는 것이지만, 실상은 모두 각자 과거에 했던 선택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었습니다. 영화 말미, 조난자가 된 애니가 피터에게 하는 대사. “그때 로프를 자른 것은 옳은 일이었어… 사실은 나도 아버지가 원하는 그런 산악인이 되고 싶었어”라는 말이 더욱 울림있게 다가오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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