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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가의 사람들] 수해로 울었던 꼬마, 재해구호물류센터의 책임자로 우뚝

2020.06.30

[희망가의 사람들] 수해로 울었던 꼬마, 재해구호물류센터의 책임자로 우뚝

 

 

 

 

 

"그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집에 오니 사방이 흙탕물 투성이고, 밖에선 동네 사람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죠. 마치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한 장면처럼요."

 

 

 

 


박현민(37)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이하 희망브리지) 북부지사장의 회상이다. 경기도 파주에서 나고 자란 박 지사장은 어린 시절 큰 수해를 당했다. 물난리를 피해 임시 보호소에 머물렀을 때는 희한한 광경도 목격했다. 인근 초등학교 운동장 한 가운데 마른 옷가지를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것. 박 지사장은 “검은색 봉지를 하나씩 주면서 ‘그 속에 넣을 수 있는 만큼 챙겨가라’고 하더라”면서 “나에게 재난 구호품에 대한 이미지를 처음 만들어 준 것 기억”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기억은 그저 옛날 얘기다. 구호물품은 지속적으로 개선과 발전을 거듭해왔다. 최근의 구호물품은 모두 재난 대피 상황에 맞게 ‘세트화’되어 있고, 이동 샤워실, 화장실, 세탁차량 같은 특수 구호시설도 개발됐다. 그리고 딱 그만큼의 시간을 거치는 동안, 운동장 한 가운데서 옷가지를 뒤지던 꼬마도 훌쩍 성장했다. 수해로 울었던 소년은 이제 재난을 대비해 구호물자를 비축하고, 필요한 때 필요한 곳에 구호물자를 급파하는 총 책임자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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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민(사진)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이하 희망브리지) 파주재해구호물류센터 지사장

 

 

 

 


‘촌놈’의 소박한 꿈을 실현시킨 곳, 희망브리지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했던 박현민 지사장은 첫 사회생활을 모 의약품회사에서 시작했다. 처음에는 설렘도 있었고 포부도 있었다. “파주 촌놈이라 그런지 서울살이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금세 사그라졌다. 일은 적성에 안 맞고, 서울이란 도시는 시끄럽고 복잡하기만 했다. 자아와 현실 사이의 괴리는 박 지사장을 지치게 했다. 그때 문득 떠오른 것이 바로 ‘사회복지’라는 키워드였다.

“대학 다닐 때 부전공이 사회복지였거든요.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있었죠. 정신없는 도시를 떠나 한적한 시골에 가서 사회복지 관련 업무를 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 삶의 질이 훨씬 나을 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그런 방향성을 가진 박 지사장 눈에 띈 곳이 바로 희망브리지였다. 재난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법정단체였지만, 각종 자원봉사와 현장구호 활동 등 다양한 업무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인 2010년 겨울, 그렇게 박현민 지사장은 희망브리지의 식구가 됐다.

마침 박 지사장이 입사했을 당시는 연평도 포격 사건이 일어난 직후. 희망브리지는 포격 현장에서 대피한 주민들을 위해 임시주거시설을 지원해주는 활동에 한창이었다. 갓 입사한 박 지사장도 이 활동에 합류했다. 박 지사장은 “재난 현장에 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투입될 줄은 몰랐다”며 “당시에는 무섭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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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지사장은 연평도 임시주거시설 입주식을 통해 “재난 이재민들이 가진 감사도, 불만도 모두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정식으로 맡게 된 것이 바로 북부지사가 관할하는 파주재해구호물류센터 업무였다. 지난 2005년 11월 완공한 파주재해구호물류센터는 경인과 강원지역의 재난·재해 발생 시, 체계적인 구호를 위한 구호물품 창고 역할을 하는 곳. 각종 재해구호세트와 구호물품의 제작·보관 외에도, 재난안전교육을 위한 교육센터와 체험관의 기능도 수행한다.

파주와 인연이 깊고, 한적한 시골 생활을 바랐던 박 지사장에겐 ‘이보다 좋을 수 없는’ 자리. 평시에는 물류센터의 구호물자를 책임지며, 재해 시 적시적소에 물품이 공급될 수 있도록 하는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한다. 또한 어린이 재난안전체험교육, 방재단 교육, 공무원 교육 등 희망브리지의 재난 관련 교육업무와 집수리, 세탁, 인형극 봉사 등 자원봉사 업무도 병행하고 있다. 큰 재난이 났을 때는 현장에 직접 나가 팔을 걷어 부치는 것도 그의 역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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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희망브리지 파주재해구호물류센터

 

 

 

 


순수함에 감화되고, 진정성에 감동 받아…

 

 

 

 


과거의 직업과 직장에 대한 염증으로 선택한 나눔과 봉사의 길이 어느새 10년째에 접어들었다. 사실 박 지사장 본인도 ‘이렇게 오래 할 수 있을지 몰랐다’고 귀띔한다. 그랬던 그를 단단히 붙잡았던 것은 봉사에 나서는 젊은이들의 순수한 열정과 도움을 받은 이들을 바라보며 느낀 보람 덕분이다.

박 지사장에게 물류센터 운영만큼 비중있는 업무가 바로 자원봉사단을 관리하는 것이다. 특히 대학생 봉사자들로 이우러진 집수리봉사단에 대한 애착이 크다. 초창기부터 관여하며 소속 청년들과 큰 친분을 쌓은 것도 있지만, 이를 통해 봉사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다는 이유가 더 크다.

“저도 대학 때 봉사를 하긴 했는데… 사실 학점 이수가 목적이었어요. 그런데 집수리봉사단 친구들은 다르더라고요. 학점 때문이 아니라 순수하게 봉사를 좋아하고, 그 속에서 보람을 찾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죠. 그 친구들을 보면서 많이 부끄러워지더라고요. 그 후로 저도 봉사를 진심으로 대하게 됐어요. 이를 일깨워준 봉사단 동생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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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단 청년들은 지금도 박 지사장을 ‘현민이 형’이라 부르며 따른다고 한다.

 

 

 

 


현장에서 만나는 수혜자들의 모습도 박 지사장을 지탱해주는 힘이다. 큰 재난이 발생하면 7~8일 동안 현장에 머무는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에, 도움을 받은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이 고마워하는 속내를 여실히 느낄 수밖에 없다고 한다. 갑작스레 발생한 재난에 밤새 구호물품을 현장으로 실어 보내고 녹초가 되어도, 아침에 받은 장문의 감사 문자 하나로 피로가 확 풀리는 경우도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는 어느 집수리 봉사에서 만났던 할머니의 말이었다. 할아버지와 사별하고, 혼자 외롭게 사시던 할머니는 집수리를 마친 박 지사장에게 “오늘은 잠 못잘 것 같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순간 도배 냄새가 나서 그러신가 하고 화들짝 놀랐어요. 그런데 전혀 뜻밖의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할배 가고… 15년 만에 도배를 새로 하니, 신혼방 된 듯한 설렘에 잠이 안 올 것 같다’는 말이었죠.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이 일을 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함마저 느낄 정도였죠.”

 

 

 

 

 

봉사현장이 데이트 장소, 이런 게 진정한 내조죠 

 

 

 

 

박현민 지사장이 느끼는 기쁨과 감사함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평생을 함께 할 동반자인 부인 역시 나눔과 봉사를 통해 행복을 추구한다. 심지어 결혼 전 부인과의 주요 데이트 장소가 ‘봉사 현장’이었을 정도다. 한 달에 두 세 번은 주말근무를 하고, 재난이 발생하면 어김없이 현장으로 급파되는 (예비) 남편을 위한 최고의 배려이자, 최고의 궁합인 셈이다.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계속되는 출장과 주말 근무에도 넌지시 ‘당신이 열심히 일할수록, 힘든 분들이 더 용기를 가질 수 있다’며 힘을 북돋는다. 최근에는 물류센터의 우렁각시 역할도 한단다. 남자 직원만 있어서인지, 정리정돈이 아쉬웠던 센터에 가끔 등장해 정리를 도맡고, 청소도 돕는다. 박 지사장은 “협회 직원들이 나만 보면 집사람 안부를 물을 정도”라며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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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지사장에게 나눔의 실천과 가정의 행복과 맞닿아있다.

 

 

 

 


중부지방의 재난 구호를 책임지는 물류센터의 창고지기이자, 현장을 마다하지 않는 열혈 봉사자인 박현민 지사장. 어린 시절 수해의 아픔을 간직한 그가, 이제는 더 많은 이들의 아픔을 보살피는 위치를 점점 굳건히 하고 있다. 10년차 재난구호 담당자답게 앞으로의 과제에 대한 고민도 크다.

“세상이 많이 좋아졌죠. 재난구호 분야 역시 발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개선의 여지도 많아요. 사회재난의 비중이 점점 커지는 만큼, 각 사회재난의 특성에 맞는 구호물자가 필요한 시대가 왔죠.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계절에 맞게 나갈 수 있는 구호세트도 필요하고요. 우리가 평소 얼마나 깊고 세밀하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재난 현장의 피해자가 느낄 고통의 양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파주재해구호물류센터 # 구호 # 재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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