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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오늘·그날] 침몰하고 터지고 불나고… 4월 보름의 악몽

2020.04.15

[그때·오늘·그날] 침몰하고 터지고 불나고… 4월 보름의 악몽

 

 

 

 

 

숫자에 대한 미신이 강력한 탓일까. 4월은 때때로 잔인한 달이다. 건조한 날씨 탓에 화재가 자주 일어나고, 춘곤증으로 인한 안전사고도 빈번하다. 막바지 해빙기 피해가 몰리는 때도 바로 4월이다. 비공식적으론 연인들의 결별률이 치솟는다는 웃지 못할 통계도 있다. 역사적으로 돌아봐도 그러하다. 4월에는 유독 굵직한 재난들이 눈에 띈다.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던 4월 보름(15일)의 사건들을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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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악몽, 겨울의 심술인가 봄의 치기인가

 

 

 

 


2시간 만에 불타버린 프랑스의 자존심

 

 

 

 


가장 가까웠던 악몽은 바로 1년 전 오늘 벌어진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사고다. 2019년 4월 15일 오후 6시 경,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지붕에서 불길이 치솟기 시작한다. 발견한 누군가의 신고에 따라 소방 당국이 신속히 출동했으나 불은 빠른 속도로 성당을 삼켰다.

14세기, 그러니까 700년도 더 된 건물에다 목재 구조로 이뤄진 성당의 상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타올랐다. 불과 2시간 만에 지붕은 전소된 채 붕괴됐고 첨탑은 앙상한 골조만 남기고 모두 녹아내렸다.

다행히 관람 시간 마감이 임박했던 터라 인명 피해는 없었고, 상당수 작은 문화재들은 성당 내부 인력들이 빠르게 옮긴 덕분에 피해를 면했다. 또한 하부의 석조 구조물까지 불길이 번지기 전에 막아내면서 성당의 기본 구조는 보존될 수 있었다.

화재 원인은 성당 외관의 개·보수공사를 위해 설치한 전기회로의 과부하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의적 방화 혹은 실수에 의한 실화 가능성도 제기됐으나 그 정황은 밝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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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과 함께 세계인의 속이 함께 불탔던 순간(사진: ARTnews)

 

 

 

 


대성당 화재 소식이 알려지면서 프랑스 국민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큰 슬픔에 빠졌다. 이 건물은 단순한 성당이 아니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자 프랑스 고딕 양식 건축의 상징이었으며, 프랑스인들의 자존심이자 역사, 그리고 가족 같은 존재였다. 한국에서도 11년 전 숭례문 방화 사건이 오버랩되면서 안타까움을 나타낸 이들이 적지 않았다.

노트르담 대성당 측은 오는 2021년까지 본격적인 복원 작업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200톤이 넘는 납으로 덮여 있던 지붕이 불에 녹아내리면서 독성을 가진 납 가루가 성당 주변에 날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화재의 원인으로 꼽힌 배선 문제도 정비가 이뤄져야 복원에 착수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120년 역사의 마라톤 대회를 짓밟은 테러

 

 

 


미국에서 열리는 ‘보스턴 마라톤 대회’는 지난 120년 넘게 열리고 있는 유서 깊은 연례 마라톤 행사다. 미국 독립전쟁의 첫 전투였던 렉싱턴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매년 ‘애국자의 날’에 개최된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 2013년 4월 15일에도 대회가 열렸다. 전 세계에서 수만 명의 마라톤 애호가들이 참가와 참관을 위해 보스턴을 찾았다. 마침 120주년을 앞두고 있던 터라 현장의 열기는 뜨거웠다.

그런데 우승자가 결승점을 지난 지 조금 지나 결승점 인근인 코플리 광장에서 갑자기 원인모를 엄청난 폭발음이 들려왔다. 폭탄은 200m 거리에서 12초 간격으로 두 차례 폭발했고,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이 폭발로 3세 소년과 23세·29세 여성 등 3명이 현장에서 사망했다. 280여 명이 부상을 당했는데, 그중 13명이 팔다리가 절단되는 중상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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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의 꿈을 짓밟은 테러(사진: Newsweek)

 

 

 

 


얼마 지나지 않아 폭발은 테러에 의한 것으로 드러났고, 범인은 체첸 출신의 미국 영주권자 형제인 것으로 밝혀졌다. 26세의 타메를란 차르나예프와 19세의 조하르 차르나예프는 사제 폭탄이 담긴 가방을 공원에 두고 폭발하게 했는데, 타메를란은 폭탄을 몸에 두르고 돌진하다 경찰의 총격에 사망했고 조하르는 체포됐다.

테러 수법이 전형적인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지하드 방식이라 미국인들이 받은 충격은 상당했다. 9·11테러가 일어난 지 10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 다시금 본토에서 테러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중상을 입은 이들은 크고 작은 트라우마와 천문학적인 병원비로 오랜 기간 고통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 의료보험 시스템상 의수·의족과 재활 치료에는 보험 적용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해자에 대해 피해보상을 청구할 수도 있지만 이미 1명은 사망했고 나머지 1명도 감옥에서 사형을 선고 받은 상태라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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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톤 시내에 비치된 희생자 추모 문구(사진: fmua/Shutterstock.com)

 

 

 

 


‘빙산의 일각’에 거꾸러진 초호화 여객선

 

 

 


1912년 4월 12일, 타이타닉호는 영국 사우샘프턴을 출발해 미국 뉴욕으로 향했다. 승조원과 승객 2천224명이 탑승하고 이들이 먹고 마시며 즐길 거리들을 가득 실은 이 배는 세계에서 가장 큰 초호화 여객선이었다. 단순한 인원 수송이 아닌 바다 위의 유흥 공간이었다.

출항 사흘째인 4월 14일 늦은 밤, 타이타닉호는 대서양에 진입했다. 감시를 보던 갑판 선원 하나가 전방에서 건물 10층 정도 되는 빙산을 발견하고, 곧바로 종을 울리며 조타실과 통제실에 상황을 알렸다. 1등 항해사 맥머스터 머독은 배를 빠르게 왼쪽으로 틀어 빙산을 피하려 시도했다.

하지만 수면 위로 보이는 빙산은 그야말로 ‘일각’이었다. 바다 밑에는 9배나 더 큰 빙산이 잠겨 있었고, 타이타닉호는 오른쪽 측면이 빙산과 충돌하고 말았다. 결국 배의 측면에 빙산이 끼어버린 모양이 되면서 4월 15일 자정 타이타닉호는 완전히 멈춰 섰다.

빙산과의 충돌로 균열이 생기면서 배에 물이 들어차기 시작했지만, 여기서도 ‘무사안일주의’가 문제가 됐다. 침수가 너무 천천히 진행되면서 승객들이 배가 침몰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것. 그만큼 대피도 늦어졌다. 설상가상으로 구명정 개수가 턱없이 모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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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호의 실제 침몰은 영화보다 더 처참했다.(사진: 위키백과)

 

 

 


그마저도 많은 구명정들이 정원을 다 채우지 않은 채로 빠르게 이탈하면서 희생자가 늘었다. 결국 15일 오전 2시, 마지막 구명정이 떠나면서 타이타닉호는 바닷 속으로 완전히 가라앉았다. 승객들은 침수된 배 안에 갇혀 사망했고, 일부는 영하의 차가운 바닷물로 뛰어들었으나 저체온증으로 목숨을 잃었다. 결국 1천514명이 사망·실종된 것으로 최종 집계 됐다.

이 밖에도 4월 15일은 마치 거짓말처럼 잦은 비보가 날아들었다. 중국 청해에서는 지진이 일어나고(2010년), 일본에선 우리 항공기가 활주로 이탈 사고(2015년)를 겪기도 했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화사한 봄을 만끽하려는 사람들의 방심에도 작은 원인이 있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무려 석 달째 감염병과 싸우고 있는 현 상황에서 되새겨봐야 할 역사 속 교훈이다.
 

 

 

#노트르담 # 보스턴 # 마라톤 # 타이타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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