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재해 이슈

[그때‧오늘‧그일] ‘4‧4 강원 산불’ 1주년, 화마에 그을린 산에도 봄은 왔을까?

2020.04.04

[그때‧오늘‧그일] ‘4‧4 강원 산불’ 1주년, 화마에 그을린 산에도 봄은 왔을까?

 

 

 

 

 

"밤새 하늘엔 도깨비불… 온 바닥은 불바다였다."

 

 

 


강원도 고성의 한 산불 피해 이재민은 1년 전 오늘, 강원도 일대를 휘감은 대형 산불을 이렇게 기억했다. 봄철의 강풍으로 산불이 유독 잦은 지역이지만, 이 정도의 불은 지역민들에게도 낯선 공포로 다가왔다. 고성의 한 주유소 인근에서 튄 불꽃은 거대한 화마가 되어 삽시간에 주변 나무와 숲으로 옮겨 붙었고, 때마침 불고 있던 강풍을 타고 고성과 인접한 속초를 지나 강릉·동해·인제까지 퍼져 나갔다. 운치 있기로 소문난 강원도의 명산들이 새 봄의 정취대신 불난리에 휩싸이게 된 것이다.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화재 발생 하루 만에 정부가 ‘국가재난사태’를 선포했고 심각한 피해를 입은 고성‧속초‧강릉‧동해‧인제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했다. 국내에서 산불로 인해 국가재난사태가 선포된 두 번째 사례였다. 강원도민을 넘어, 온 국민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4‧4 강원 산불이 발생한 지 어언 1년, 화마에 손상된 산은 얼마나 복구되었고, 보금자리를 잃은 이재민들의 삶은 어느 정도 회복됐을까? 강원 산불 그 후 1년의 모습을 조명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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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재난사태’가 선포될 정도로 강력했던 지난해 강원 산불의 모습(사진: BBC)

 

 

 

 


건조한 숲과 강한 바람이 만든 비극

 

 

 

 


2019년 4월 4일 오후, 강원도 고성 원암리의 한 주유소 인근 전봇대에서 갑자기 불꽃이 튀었다. 그렇게 촉발된 작은 불씨를 대형 산불로 진화시킨 것은 다름 아닌 건조한 날씨와 강한 바람이었다. 본래 우리나라의 초봄은 상당히 건조한 기후를 나타낸다. 입춘 이후 건조 및 화재주의보가 집중적으로 발효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특히 2019년은 이전 해의 강수량이 유독 적어 나무들의 건조 정도가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다. 강원도의 온 숲에 바짝 마른 땔감이 즐비했다는 얘기다.

설상가상 ‘강풍’도 심했다. 속초시 영랑동의 한 주민은 “원래 이 동네가 봄에 강풍이 자주 몰아닥치는 곳”이라며 “주민 자치적으로 봄에 산불 예방활동을 해온 것도 그런 강풍의 존재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당시 불어 닥친 강풍은 불을 퍼뜨리는 것은 물론 조속한 진화를 막는 원흉이기도 했다. 산불 발생 3분 만에 소방관들이 현장에 도착해 굵은 물줄기를 뿌려댔지만, 초속 30m를 훌쩍 넘는 강풍 탓에 소화액이 불길 위에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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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듯이 불어대는 바람은 산불을 강원도 전역으로 퍼트렸다.(사진: 연합뉴스)

 

 

 

 


그렇게 화마는 이틀 동안 천방지축으로 강원도의 산과 들, 그리고 가옥을 유린했다. 전국의 소방차가 강원도로 집결되는 진풍경 끝에 가까스로 최후의 불씨까지 없애는데 성공했지만, 잿더미 속에 남은 건 절망과 한숨뿐이었다. 최종적으로 집계된 산림 피해면적은 2,832헥타르(㏊), 이는 축구장 면적(0.714㏊)의 약 4,000배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크기다. 여기에 3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1천524명에 이르는 이재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농‧축산시설, 건물, 농기계, 차량 등 재산피해는 1천295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무엇보다 산과 나무가 가진 기후‧환경적인 가치, 그리고 당시 산불이 본격적인 농번기를 앞둔 논‧밭까지 쑥대밭을 만들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피해는 추산할 수조차 없을 만큼 심각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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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까지 침범한 산불은 수많은 가옥을 불태우면서 대규모 이재민을 발생시켰다.

 

 

 

 


아픔 속에서 빛났던 情, 전 국민의 마음 모였다

 

 

 


급작스럽게 발생해, 단 이틀 만에 지역민들의 보금자리를 잿더미로 만들어버린 비보에 전 국민이 안타까워했다. 이미 화재 진압단계부터 전국의 소방차 820대, 진화 헬기 14대, 진화 차량 650여대, 1만2천87명의 소방 인력이 대거 투입되며 하나 된 힘을 과시했다. 소방차 820대는 단일 화재로 동원된 차량 중 역대 최대 규모다.

산불이 진화된 후에는 국민들이 움직였다. 여러 구호단체와 자원봉사자들이 강원도로 속속 모여들었다. 재난 구호모금 전문기관인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에서는 신속히 대피소 칸막이, 이동식 화장실 및 샤워실, 세탁구호차량 등을 지원하고, 임시대피소에 생필품으로 구성된 구호물품을 전달해 이재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했다. 여기에 각 지자체의 자원봉사센터에서 파견한 ‘사랑의 밥차’도 모습을 드러냈다. 각급 단체에서는 각종 식자재와 함께 봉사 인력을 파견해, 이재민들의 식사를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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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로 집결하는 전국의 소방차들(사진: 인천경제)

 

 

 

 


위로의 마음을 담은 기부물품들도 속속 도착했다. 의류회사에선 옷가지를, 제약회사에선 구호 의약품을, 가전회사에선 밥솥을 보내는 등 저마다 할 수 있는 성의를 차곡차곡 보탰다. 전국 각지의 시민들이 보내온 다양한 먹거리도 대피소를 가득 채웠다. 이재민 구호와 피해복구를 위한 성금 행렬도 이어졌다. 정치권·재계·문화계·체육계·지자체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많은 이들이 성금을 쾌척했고, 사고 소식을 안타까워하는 국민들도 저마다 주머니를 털었다. 그렇게 희망브리지를 통해 모인 성금이 총 362억 원에 달했다.

 

 

 

 


1년이 지난 지금, 피해 이웃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1년의 시간은 화마로 인한 쓰라린 상처를 치유하기 충분했을까? 그 대답은 “아직”이다. 계절이 한 바퀴 돌아 다시 봄이 찾아왔지만, 그 때 그 상흔은 여전히 남아있다. 물리적으로 장기간의 시간이 요구되는 조림 재건 사업은 차치하더라도, 일상으로의 복귀 문제도 ‘현재 진행형’이다.

희망브리지가 강원 산불피해 이웃에게 국민성금 336억3천932만 원을 지원하고 다양한 구호활동을 펼치며 도움의 손길을 보탰지만,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이재민들이 정상 생활로 돌아가기에는 아직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문제는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재민들이 있다는 것이다. 강원도청 관계자에 따르면, 강원산불 피해 이재민 658가구‧1천524명 중 무려 64%(982명)가 새 보금자리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이재민 10명 중 6명 이상이 여전히 조립주택과 임대주택을 전전하고 있는 상태란 것이다. 산불피해 배상문제를 두고, 발화원인을 제공한 한국전력과 정부, 그리고 비상대책위원회 간의 잡음이 이어지고 있는데다, 겨울철 공사 중지 등 외부 변수까지 겹치며 나타난 결과다.

설상가상 올 초부터 맞이하게 된 코로나19 사태가 온 나라를 잠식하며, 산불 피해보상, 피해복구 활동에 제동이 걸렸다. 실제로 올해 희망브리지가 피해 지역에 나무심기 및 지역회복을 위한 다양한 사업들을 준비했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불가피하게 중단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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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앞에 쌓아놓은 산불에 탄 자동차. 한전에 대한 이재민들의 불만을 여실히 보여준다.(사진: 강원도민일보)

 

 

 

 


여기에 이맘때쯤 기승을 부리는 산불의 재발 여부도 크나큰 위험요소다. 지역 내 모든 민간단체들의 이목이 코로나19 예방에 집중되면서, 산불예방에 구멍이 생길 수도 있는 상황. 지난해 산불 사고 당시, 현장에서 예찰 활동을 수행하고 이재민 대피를 돕는 등 피해 복구에 직접 참여했던 속초시자율방재단의 양승혁 단장은 “본래 이맘때면 산불 예찰 활동에 집중해야 할 시기지만, 지난 1월 말부터 보건소와 함께 교회, 터미널, 상가, 시장 등 속초 전 관내의 코로나19 방역활동에 집중 투입되고 있다”라며 “방역 활동 중에도 강풍이 예고된 날에는 산불 예찰 활동을 병행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아직 산불피해 이웃들의 마음에 봄이 오지 않았지만 우리는 당시의 아픔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기억하는 한 피해 재발을 대비할 수 있고, 도움이 필요한 곳에 희망을 나눌 수 있으리라 본다. 여러모로 우울한 4월이지만 산불피해 치유를 위해, 코로나19 종식을 위해 우리 모두의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하는 때다.



 

#강원산불 # 국가재난산태 #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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