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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줌의 위로] 극한의 절망 속에서도 피어오른 희망을 향한 의지, 소설 <페스트>

2020.03.31

[한줌의 위로] 극한의 절망 속에서도 피어오른 희망을 향한 의지, 소설 <페스트>

 

 

 

 

"확실한 것은, 사람은 제각기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늘 스스로를 살펴야지 자칫 방심하다가는 남의 얼굴에 입김을 뿜어서 병독을 옮겨 주고 맙니다. 자연스러운 것, 그것은 병균입니다. 그 외의 것들, 즉 건강, 청렴, 순결성 등은 결코 멈추어서는 안 될 의지의 소산입니다. 정직한 사람, 즉 거의 누구에게도 병독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될 수 있는 대로 마음이 해이해지지 않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 소설 <페스트 中에서> 

 

 

 

 

사람들이 읽는 책은 시대의 상황을 반영합니다. 최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가 크게 확산되면서 전염병을 소재로 한 소설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걸 보면 잘 알 수 있죠. 그중에서 크게 주목받는 소설이 있는데, 바로 1947년 발표된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La Peste)>입니다. 교보문고의 3월 셋째 주 온‧오프라인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 6위에 올랐을 정도죠. 이는 전주 대비 무려 34계단이나 상승한 수치입니다. 코로나19 공포가 베스트셀러 순위에도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는 셈이죠.

코로나19로 인해 모두가 지치고 힘든 지금, 마치 현재를 찍어낸 듯, 똑같은 상황을 그려내고 있는 소설 <페스트>에서 우리는 어떤 희망의 메시지를 엿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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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공포가 확산되면서 전염병이 닥쳤을 때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그려낸 소설 <페스트>가 주목받고 있다. (사진: 민음사)

 

 

 

 


 폐쇄된 도시, 극한의 절망과 마주하는 인간 군상

 

 

 


소설 <페스트>는 14세기 유럽에서 유행한 ‘흑사병’으로 공포와 죽음, 이별의 아픔 등 극한의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의 인간 군상을 철학적으로 그려낸 작품입니다. 작가 알베르 카뮈는 ‘20세기 양심’이라 불리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페스트>는 그가 무려 7년 동안 준비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빠져나갈 길 없는 재앙을 온몸으로 견뎌야 하는 비극적 상황을 현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그 속에 결코 꺾이지 않는 희망의 의지를 담아내어, 당시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정서적으로 공황 상태에 빠져 있던 사람들에게 큰 공감을 얻었죠. 초판 2만 부가 출간 한 달 만에 매진되었을 정도로요.

<페스트>의 작품 배경은 조용한 해안 도시 ‘오랑’입니다. 이곳에 언젠가부터 거리로 나와 비틀거리다가 죽어가는 쥐 떼가 곳곳에서 발견되죠. 급기야 정부 당국이 페스트 경보를 선포하고 도시를 봉쇄하자 무방비였던 오랑은 대혼란에 빠집니다. 주인공이자 의사인 베르나르 리외는 의사로서 사명을 다하려 오랑에 남습니다. 여기에 기득권층 출신의 반항아 장 타루, 위험을 무릅쓰고 리외를 돕기로 결심한 신문기자 레이몽 랑베르, 흑사병을 타락한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징벌이라고 주장하는 파늘루 신부, 흑사병으로 야기된 혼란한 상황을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챙기는 코타르 등이 등장하며 피할 수 없는 재난 앞에서 인간은 어떤 선택을 하는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작가인 카뮈는 고립된 도시 속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재난에 대응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재난 앞에서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며 도피하고, 또 다른 사람은 초월적인 존재에 기대어 현상을 해석하려고 하죠. 그리고 또 어떤 사람들은 재난에 맞서 ‘투쟁’합니다. 카뮈는 운명에 잠식당하기를 거부하고 적극적으로 질병과 죽음에 대항해 싸우는 인물들을 통해 극한의 상황에서도 당당하게 투쟁하고 진리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자신의 세계관을 설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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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는 소설 <페스트>에 현실이 아무리 잔혹해도 희망을 놓지 않고 자신의 걸음을 이어나가는 것이 진정한 ‘반항’이라는 뜻을 담았다. (사진: 민음사)

 

 

 

 


죽음이라는 엄혹한 조건 앞에서도 억누를 수 없는 희망에의 의지

 

 

 

 


소설 <페스트>는 묻습니다.

“전염병 앞에서 인간은 무너져야만 하는가.”
“영생의 기쁨이 순간적인 인간의 고통을 보상해 준다고 누가 감히 단언할 수 있단 말인가?”


전염병으로 폐쇄된 도시, 극한의 절망 속에서 사람들은 처음엔 공포에 떨었으나 이윽고 지쳐가고, 나중에는 무감각해져갑니다. 그 모습은 언뜻 현실의 대한민국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 운동을 실천하고 있음에도 여행객이 증가하고 거리로 나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광경을 떠올리게 하죠.

“그것은, 고역에 지칠 대로 지쳐서 그저 일상적인 자기 일에 과오나 없으면 그만으로 여기다 보니 결정적인 작전도 휴전의 날도 더 이상 바라지 않게 된 대규모 전쟁의 전투원에게서나 상상할 수 있는 무관심이었다.”

“재앙에 맞서서 투쟁을 계속하는 사람들에게 차츰차츰 밀려들고 있는 탈진 상태의 가장 위험한 결과는, 외부의 사건이나 타인의 정서 같은 데에 대한 무관심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고 있는 무성의에 있는 것이었다. … 그 사람들은 점점 더 빈번하게 자기 자신들이 규정해 놓은 위생 규칙을 소홀히 하고, 자기 자신들 몸에 실시하기로 했던 수많은 소독 규칙을 잊어버렸으며, 때로는 전염에 대한 예방 조치조차도 취하지 않고 페스트에 걸린 환자들 곁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페스트>는 던져놓은 질문에 대답합니다. 죽음이라는 엄혹한 조건 앞에서도 억누를 수 없는 희망에의 의지를.

“페스트가 대체 무엇입니까? 그게 바로 인생이에요. 그뿐이죠.”

“재난 속에서도 인간에게는 경멸할 것보다 찬양할 것이 더 많다.”


“이런 방법으로든 저런 방법으로든 싸워야 한다는 것이지, 무릎을 꿇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었다.”

소설 <페스트>는 절망과 맞서는 것은 결국 행복에 대한 의지, 즉 희망을 놓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야말로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진정한 반항임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필요한 미덕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죠.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재앙이 두서넛의 희생자를 후려쳐서 쓰러뜨리고 있다. 그러나 그거야 뭐 중지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인정해야 할 것이면 명백하게 인정하여, 드디어 쓸데없는 두려움의 그림자를 쫓아버린 다음 적절한 대책을 세우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페스트가 멎을 것이다.”

 

 

 

 


우리는 아직 전쟁터에서 공포와 맞서 싸우고 있다

 

 

 


코로나19가 그 위세를 떨칠 줄을 모릅니다. 카뮈는 <페스트>에서 전염병을 전쟁에 비유했죠. 즉, 우리는 아직 전쟁터에 있는 셈입니다. ‘결정적인 작전도 휴전의 날도 더 이상 바라지 않게 된 전투원’에 가까워질 정도로, 코로나19의 공포는 길고도 지칩니다. 공포가 둔감해지고, 지켜야 할 미덕도 흐려질까 우려되는 상황이죠. 이런 때일수록 우리가 지켜야 할 미덕을 되새기며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페스트>의 주인공 리외가 말한 것처럼 ‘쓸데없는 두려움의 그림자’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습니다. 이 소설도, 그리고 현실도 결국 이 공포는 끝이 나기 마련이니까.

<페스트>에 등장하는 리외와 랑베르의 대화를 마지막으로, 이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이것만은 꼭 말해 두고 싶네요. 이번 일은 영웅주의 따위라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성실함의 문제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어쩌면 웃음거리가 될지 모르지만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함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죠, 성실함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어떠한 것인지 알 수 없네요. 그러나 내 경우에는 결국 자신의 직무를 완수하는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페스트 # 카뮈 # 전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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