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재해 이슈

[코로나19특집] ‘바이러스가 판쳐도 우리네 삶은 멈출 수 없기에’ 정부의 감염병 대응사

2020.03.17

[코로나19특집] ‘바이러스가 판쳐도 우리네 삶은 멈출 수 없기에’

정부의 감염병 대응사

 

 

 

 

따뜻한 봄이 찾아왔지만 코로나19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확진자 증가세가 한풀 꺾이고 있다지만, 언제 또 제2의 ‘신천지’, 제2의 대구‧경북이 나타날지 모를 일이다. 감염 예방 현장에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이유다. 확산 방지 및 피해자 구호를 위한 정부의 악전고투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15일에는 이번 코로나19로 가장 큰 피해를 당한 대구‧경북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하며 병마에 지친 민심을 위로했다. 감염병 사유로 특별재난지역을 지정한 국내 첫 사례로, 해당 지역은 복구비의 50%를 국비로 지원받고, 전기요금·통신비 등의 감면 혜택도 받게 된다.

사실 감염병에 의한 공포는 아주 오래 전부터 있어왔고, 그럴 때마다 해당 시대의 정책적 조치와 대응 역시 존재했다. 그렇다면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어졌던 감염병에 대한 정부 구호정책을 꼼꼼히 살펴보고 개선점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그러한 노력을 발판 삼아 작금의 코로나19 사태도 머잖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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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현재 코로나19와 전쟁 중이다.

 

 

 

 


전염병과 비(非)과학으로 싸웠던 시대

 

 

 


우리나라 감염병의 기록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사기’에는 ‘백제 온조왕 4년 봄‧여름 기근이 발생하고 역병이 유행했다’고 적혀 있다. ‘어떤 질병은 한번 앓으면 다시 걸리지 않는다’는 기록이 존재하는 것으로 볼 때 면역력 개념도 일찍부터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백제·신라에서는 수시로 감염병이 창궐했는데, 각국에선 이를 막기 위해 의학 교육기관을 운영했다. 의술과 약을 다뤘던 기록도 남아 있다. 그러나 전문 의료진의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이들은 왕실과 귀족 등 일부 계층에 불과했고, 일반 대중들의 감염병 치사율은 매우 높았다.

의학이 상대적으로 발달한 고려시대에도 감염병은 전쟁보다 무서운 존재였다. 당시 최고 수준의 의료 혜택을 받은 왕들도 바이러스를 피해가지 못했다. 고려 경종·예종·인종 등은 홍역과 유사한 질진(疾疢)이라는 역병에 감염돼 사망했다.

여기에 한반도 외부와의 교류가 크게 늘어나면서 학질과 이질, 임질, 천연두, 광견병, 온역 등 감염병의 종류도 크게 늘어났다. 고려 정부는 이를 제대로 컨트롤할 리 만무했다. 이에 큰 감염병이 돌 때마다 인구가 대폭으로 줄어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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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머니즘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감염병 대응

 

 

 

 


조선의 경우 건국 이후 500년 동안 감염병이 발생한 햇수는 160년에 달한다. 평균적으로 10년 중 3번 이상은 병이 창궐한 것이다. 조선시대 역병은 주로 기근과 동시에 찾아오면서 피해가 막심했다.

근대 이전의 조선 역시 감염병에는 심각하게 취약했다. 일가가 다 같이 모여 음식을 나누고 단체 활동이 많은 탓에 병균의 감염과 전염은 도처에서 쉽게 일어났다. 그럼에도 전문적인 의학 지식이 없어 ‘귀신의 소행’ 혹은 ‘천벌’ 등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다. 치료보다 굿이나 제사에 치중했던 배경이다.

 

 

 

 


21세기 한국정부의 대(對) 감염병 투쟁사

 

 

 


지난 20년 동안 한국에서는 매 정부마다 감염병과 전쟁을 치러왔다. 2002년 사스(SARS),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H1N1), 2015년 메르스(MERS) 등은 국가적 사투의 대상이었다. 각 정부마다 최선을 다했지만 대처 능력과 그 성과 면에서는 조금씩 차이를 보였다.

2002년 11월 중국에서 최초 발생한 사스는 국내로 흘러들어 2003년 3월 전염병 경보가 발령되기에 이른다. 정부는 전국 242개 보건소를 통해, 사스 감염 위험지역 입국자 23만 명을 전화 추적 조사했다. 5천 대가 넘는 항공기와 1만 척 이상의 선박에서 100만 명가량의 탑승객을 대상으로 검역이 이뤄졌고, 환자 접촉자 등 2200여 명을 자택에 격리했다. 군 의료진도 방역에 총동원됐다.

그 결과 국내 감염자 수는 3명에 그쳤고, 사망자는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경보 발령 114일 만인 7월 7일 상황은 공식 종료됐다. 그해 세계보건기구(WHO)는 한국을 사스 예방 모범국가로 인정했으며, 이때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감염병 대응의 핵심 기구인 질병관리본부가 출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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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감염병에 꽤 노출된 국가 중 하나다.

 

 

 

 


신종플루는 2009년 3월 미국에서 발생해 5월 한국에 상륙했다. 5월 한 달 동안 39명의 확진자가 나왔고, 8월에 첫 사망자가 발생했다. 정부는 4월부터 중앙인플루엔자대책본부를 구성하고 빠르게 격리조치를 취하는 등 초기대응에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치료제인 타미플루의 확보가 미흡한 점은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당시 정부가 항바이러스제 구입 예산을 매년 줄이고 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큰 질타를 받았던 것. 최종적으로 감염자는 약 70만 명, 사망자는 263명으로 집계됐다.

2015년 창궐했던 메르스는 위기 대응 측면에서 가장 부족함이 컸던 감염병으로 기억되고 있다. 5월 20일 국내 첫 확진자가 발생했지만 정부 산하의 대책본부는 열흘 가까이 지나서야 구성됐다.

관계 기관 간 내·외부 커뮤니케이션 체계가 부실해 정보의 공유와 현장 대처가 효율적이지 못했다. 또한 확진자가 발생한 병원 리스트의 공개 여부, 그리고 그 리스트의 정확성을 두고 혼선과 논란이 거듭됐다. 결국 국내에서 감염자는 186명, 사망자는 39명을 기록했다.

 

 

 

 


코로나19, 공적마스크부터 추경까지…

 

 

 


지난 1월 20일 국내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했다. 질병관리본부는 감염병 위기경보 수준을 ‘관심’에서 ‘주의’ 단계로, 이후 일주일 뒤엔 ‘경계’로 격상했다. 정부는 중국 후베이성 전역에 대한 여행 경보를 3단계 철수권고로 상향 조정했고, 중국 전역을 검역대상 오염지역으로 지정했다. 이어 감염병 감시·관리 대상을 우한에서 후베이성 방문자로, ‘폐렴 또는 폐렴의심 증상’에서 ‘발열 또는 호흡기 증상’으로 확대했다. 또한 전세기를 띄워 우한에 머물던 교민 367명을 데려왔다.

정부의 코로나19 초기 대응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소 갈린다. 경험하지 못한 신종 바이러스에 비교적 선방했다는 평가와 함께 중국으로부터의 입국을 신속하게 제한하지 않아 피해를 키웠다는 비판이 동시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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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서 마스크를 구입하기 위해 늘어선 줄. 다행히 한국은 공적마스크 판매 이후 이 정도로 줄을 서지 않아도 된다.(사진: Business Insider)

 

 

 

 


가능한 한 많은 이들을 검진하다보니 확진자 수가 엄청나게 늘면서 국제사회의 우려를 불렀다는 지적이 있다. 실제로 많은 국가들이 한국인 혹은 한국 방문자의 입국을 불허하거나 입국 즉시 격리시키는 조치를 발동시켰고, 이는 해외를 방문하는 국민들의 불편함을 가중시켰다.

반대로 적극적인 검진이 사태 진정에 도움이 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적잖은 외신들은 한국 감염병 검진 시스템의 우수성을 칭찬하고 있으며, 낮은 치사율에 대해서도 놀라움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엇갈린 평가와 별개로 정부의 공적마스크 공급과 추가경정예산 편성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반응이 많은 편이다. 정부는 마스크 사재기를 집중 단속하는 동시에 국민 1인당 주 2개씩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빠른 시간에 안착시켰다. 추경 편성 역시 세부적인 조율만 남아 조만간 투입될 예정이다.

 

 

 

 


코로나 ‘그 후’, 달라져야만 하는 사회

 

 

 


코로나19가 언제쯤 종식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3월만 잘 버티면 한풀 꺾일 것이란 예상부터 기온이 높은 한여름이 도래해야 안정을 기대할 수 있다는 주장까지 다양하다. 매년 겨울마다 찾아오는 변종 바이러스가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확실한 것은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마지막 바이러스가 아니라는 점이다. 코로나19에 대한 백신은 언젠가 개발되겠지만, 이를 비웃듯 바이러스는 또 다른 변종을 일으켜 인류를 위협할 것이다. 그렇기에 국가 차원의 대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 역시 “언젠가 코로나19를 완전히 극복한다하더라도, 만족하고 자화자찬하기보다는 충분한 복기를 통해 탄탄한 매뉴얼을 만들어 내야한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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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기와 매뉴얼 마련은 감염병의 침입을 대비한 진지구축과 같다.(사진: USDefense)

 

 

 


또한 감염병에 대한 기술적 대응뿐만 아니라 국민적 불안을 불식시키고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한 조치들도 요구된다. 실제로 과거부터 이번 코로나19 국면까지 정부가 국민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의 실수가 있었다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다. 이달 초 정부는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하고 ‘안심해도 된다’는 대국민 메시지를 보냈지만 곧바로 대구·경북에서 집단 확진이 발생하면서 신뢰가 순식간에 무너지고 혹독한 비판에 시달렸다. 정부는 기본적으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되, 신중한 위기관리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평소에는 크게 감지되지 않다가 이번 사태로 인해 수면 위로 떠오른 각종 사회적 문제들도 신경 써야 한다. 당장 일선학교 개학 연기로 인한 맞벌이 학부모들이 짊어져야 하는 부담, 급여를 받지 못하고 휴가를 쓰거나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이들의 부담, 수익을 내지 못해 가게 문을 닫아야 하는 이들의 부담은 엄중한 현실이다. 더 나아가 이런 위급한 시국에도 위험에 노출된 채 노동을 해야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바이러스로 세상이 멈추면 삶도 함께 멈춰야만 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정부가 사회적 안전망을 미리 마련하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해서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 감염병 #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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