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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특집] 바이러스 공포의 최전선에서… 코로나19 의료진의 토로

2020.03.09

[코로나19특집] 바이러스 공포의 최전선에서… 코로나19 의료진의 토로

 

 

 

 

"두터운 방호복을 입고, 매일 초긴장 상태로 일하니 피로는 곱절이에요. 몸보다 더 힘든 건 전염에 대한 불안과 초조함이죠. 집에 돌아와 아이 손을 잡는 것도 망설여질 정도니까…."

 

 

 


경기도 일산 소재의 한 병원에서 임상병리사로 일하는 이순영(가명‧43)씨의 목소리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매일매일 살얼음 위를 걷는 듯한 긴장감과 하루 15시간 이상 일하며 축적된 피로감에 짓눌린 탓이다. 진단검사의학과 소속의 이 씨는 작금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사태의 최전선에서 활약한다. 반도체 공장에서나 입을 법한 방호복을 입고, 검사자의 가래나 입‧코 내부의 검체를 채취하여 감염을 확인하는 역할이다. 이 씨는 “2월부터 다른 업무가 ‘올 스톱’되고, 코로나 검사에만 매달리고 있다”면서 “선별진료소가 생기면서 검사자의 수가 조금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하루 15시간가량 일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심신이 고되지만 따뜻한 격려나 응원은 언감생심, 오히려 사태가 심각해질수록 외로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그들의 운명이다.

“사실 가급적이면 제가 하는 일을 알리지 않으려고 해요. 저는 ‘제 일’이니까 하지만, 누군가에겐 ‘바이러스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일 수도 있잖아요. 주변에 괜한 오해와 공포를 주고 싶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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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와 맞서는 의료진들은 긴장감과 피로, 고립감의 3중고를 겪는다.

 

 

 

 


사그라지지 않는 공포, 의료진 피해 심각하다

 

 

 

 


코로나19의 누적 확진자가 어느덧 7천 명을 넘어섰다(9일, 0시 기준). 지난 1월 20일, 국내에서 첫 확진자가 발견된 이후 47일 만의 일이다. 이 사이 사망자도 50명으로 늘었다.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일반 병원이나 요양병원 같은 의료기관의 부담은 지속적으로 가중되고 있다. 환자들은 몰려오고, 의료진들은 고갈되며, 그 와중에 방어막이 뚫리는 상황도 속속 나타난다. 코로나19 감염 사례의 70% 이상이 집단감염에 의한 것이고, 만성 혹은 기저질환자들의 증상이 특히 심각한 것으로 밝혀진 상황에서 병원은 매우 큰 위험 인자를 지니고 있는 공간이다. 113명을 전염시킨 경북 청도 대남병원이나 51명의 확진자가 발생한 봉화 푸른요양원 사례처럼 말이다. 그 와중에 지난 6일에는 경기도 성남의 분당제생병원에서 환자 3명과 간호사 2명, 간호조무사 3명 등 8명이 감염 확진 판정을 받았다. 8일에는 서울백병원에서 대구 거주지를 속이고 입원했던 환자가 확진 판정을 받았다. 두 병원은 원내 코로나 감염 가능성을 차단하겠다는 취지로 국가가 지정한 ‘국민안심병원’ 중 한 곳이었다. 최후의 심리적 안전망마저 유명무실해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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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기관에서 발생하는 집단감염 사례가 잇따르면서 방역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상황이 이쯤 되니, 태풍의 눈 속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의료진들에 대한 우려는 후순위로 떠밀리고 있는 실정이다. ‘직업인’을 넘어 인간으로서 이들이 느끼는 심신의 부담은 이미 위험수위에 다다랐다. 서울 소재의 한 선별진료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간호사 김영인(가명‧33)씨는 “매일 감염되는 상상을 하게 된다”고 토로했다.

“몸을 칭칭 싸맸다 싶을 정도로 보호 장구를 착용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무섭지 않은 건 아니거든요. 바이러스 보균자일지도 모를 이들을 하루에 수십 명씩 맞닥뜨리는데… 내가 감염자가 됐다고 상상하면 두려움보다 미안함이 앞서요. 누군가는 계속해서 해야 하는 일이이니까….”

 

 

 

 


“모든 것이 처음인 혼돈, 어찌해야 할지…”

 

 

 

5년차 간호사인 김주현(가명‧28)씨는 요즘 소위 ‘패닉’ 상태다. 코로나19로 인해 자신을 둘러싼 주변이 정상궤도를 한참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 첫 시작은 일하던 병원의 폐쇄 결정이었다. 김 씨의 소속 병원과 인접한 종합병원에서 다수의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내려진 선결적 조치였다. 김 씨는 “우리 같은 1차 병원은 대형병원과는 다르게 이런 상황에 대비한 시스템 같은 것이 부족해 혼란을 겪었다”면서 “그러다보니, 파급력이 너무 크게 미쳤고 이는 결국 환자들의 피해로 이어졌다”고 회상했다.

기존 입원 환자들을 선별적으로 퇴원조치 시키고, 남은 환자들의 동요를 최소화시키는 과정에서도 크나큰 무력감을 맛봤다고 한다.

“간호사라는 직업이 환자나 보호자와 가장 가까운 역할이잖아요. 그런데 이번 사태로 병원이 어수선해지면서 환자분들의 불안과 불만이 극에 달했어요. 그걸 옆에서 다 듣고 있는데,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더라고요.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쏟아지는 주변의 우려도 부담스럽긴 마찬가지. 하루가 멀다할 정도로 들리는, 의료진 감염 소식에 가족‧친지‧친구 모두 전전긍긍이다. ‘백의의 천사’가 됐다고 자랑스러워하던 부모님은 매일 아침 연락하여 걱정 섞인 안부를 묻고, 약혼자는 “이참에 그만두라”는 눈초리를 노골적으로 보낸다. 김씨는 “같이 일하는 선‧후배 간호사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며 “어서 빨리 이 악몽 같은 시간들이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이라며 끌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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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 같은 시간이 빨리 마무리되길… 우리 모두 함께 기원합니다. 힘내세요!

 

 

 

 


의료진의 감염이나 ‘번 아웃’으로 인한 이탈 문제는, 의료진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의료 공백과 입원 환자들의 2차 피해, 응급환자들의 치료기회 상실 등의 부수적인 상황까지 고려하면 자칫 대공황으로 빠질 수 있는 심각한 문제다. 많은 전문가들이 ‘국공립거점 전문병원 운영’, ‘지자체 중심의 의료 거버넌스 확립’, ‘투-트랙 진료 체계 정립’ 등 긴급대책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최전선에서 목숨 건 사투를 펼치고 있는 그들에게 의무와 희생만을 강요하기엔, 바이러스 탈출기의 마침표를 찍을 날이 너무나 요원하다. 다행스럽게도, 이 같은 사각지대를 바라보는 시선은 조금씩 늘고 있다. 휴가를 내면서까지 자원봉사에 나선 의료진, 어려움에 처한 동료들을 돕겠다고 대구‧경북으로 향하는 간호사들의 소식이 그 어느 때보다 반갑게 들린다.
 

 

 


 

#코로나19 # 의료진 #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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