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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家의 사람들] 나눔을 스케치하고, 희망을 채색하는 화가_ 김현정 희망대사

2020.01.28

[희망家의 사람들] 나눔을 스케치하고, 희망을 채색하는 화가_ 김현정 희망대사

 

 

 

 

"이래 봬도 제가 힘 좀 씁니다. 화가란 직업이 은근 중노동이거든요. 못도 잘 박고, 페인트칠도 잘하고, 도배는 거의 전문가 수준이죠. 몸 쓰는 건 전부 자신 있으니, 아무 곳이나 불러주세요~!"

 

 

 


곱게 차려입은 한복과 어울리지 않은 털털한 입담에 객석에선 웃음이 터져 나왔다. 당찬 출사표의 주인공은 ‘한국화의 아이돌’로 불리는 김현정(32) 작가. 지난해 연말 ‘희망브리지 감사의 밤’ 행사에서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이하 희망브리지) 희망대사로 위촉된 김 작가의 소감은 그녀의 표현 기법만큼이나 당돌하다. 참신한 발상과 풍자를 통해 세상 고루할 것만 같은 동양화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김현정 작가는 이미 한국 화단에서 입지를 단단히 굳힌 유망주다. 2014년 ‘10년 뒤 한국을 빚낼 100인’ 선정(동아일보), 2016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한국인 최연소 개인전 개최, 2017년 ‘아시아에서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의 30인’ 선정(포브스) 등 굵직한 행보를 이어오고 있다. 이번 희망대사 위촉은 이 겁 없는 예술가의 새로운 도전인 셈. 2020년 새해를 맞아, 김현정 작가가 그리고 있는 밑그림을 직접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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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연말, ‘희망브리지 감사의 밤’ 행사를 통해 희망대사로 위촉된 김현정 작가

 

 

 

 


‘럭키’했던 예술가가 세상에 보답하는 방식

 

 


김현정 작가는 누구보다 빠르게 자신의 업적을 쌓아가고 있는 예술가다.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개인전 제안을 받으며 등단(登壇)했고, 27살 나이에 개최한 개인전에서는 가나인사아트센터(인사동) 최다 방문객 기록을 경신할 정도로 대중의 큰 관심을 받았다. 40대까지 ‘신진작가’로 분류되는 국내 미술계에선 이례적인 행보. 하지만 김 작가는 “그때그때 마주하는 상황들이 잘 풀려가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단지 운이 좋았다는 것이다.

‘내가 받은 걸 세상과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샘솟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게 처음 시작한 활동이 보육원 후원이었다. 아이들을 워낙 좋아하는데다, 마침 당시는 ‘베이비박스’ 문제가 한창 불거지고 있을 때이기도 했다. 시설 아이들에게 분유와 기저귀를 후원하고, 매달 노력봉사도 참여했다.

나눔과 봉사는 중독성이 있었다. 도움을 주고 싶어 시작한 활동에서 오히려 위로와 안정을 얻었다. 2013년, 두 명으로 시작한 후원아동은 어느새 30명으로 늘었고, 지금까지 10여 건의 수상을 통해 받은 상금 역시 이곳저곳에 전액 기부되었다.

“미술하는 사람들이 우울증에 잘 걸려요. 깊은 사색의 골짜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거죠. 그런데 우울할 때마다 아이들을 통해 ‘힐링’이 되더라고요. 기부나 봉사를 통해 주는 것보다 제가 얻어가는 게 훨씬 컸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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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중인 김현정 작가. 정갈하게 차려입은 한복은 이제 그녀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홍보대사 활동 역시 김현정 작가가 세상과 나누고 소통하는 창구 중 하나다. 2014년에 캄보디아 ‘희망도서관’ 홍보대사로 첫 발을 내디딘 김 작가는 2018년부터 서울시 홍보대사도 맡고 있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풍성한 영감을 얻고자 하는 그녀의 세 번째 선택이 바로 희망브리지의 홍보대사인 ‘희망대사’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는 고민도 살짝 있었다고 한다. 재해구호라는 것이 누군가에겐 정말 중대한 일인 만큼,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관이 지닌 가치와 행적을 살피며 ‘해낼 수 있을까?’라는 우려는 ‘해내고 싶다!’는 각오로 바뀌었다.

“우리 사회가 너무 필요로 하는 일을, 정말 오랫동안 해온 단체라는 것을 알았어요. 어떤 부분에서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죠.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정말 큰 보람과 기쁨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지금의 나를 만든 ‘소통’의 힘으로…

 

 

 


김현정 작가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소통’이다. SNS, 전시, 강연, 연재, 출판 등으로 끊임없이 소통하는 예술가로도 유명하다. SNS 채널만 13개를 운영하며, 총 구독자수는 20만 명을 훌쩍 넘는다.

처음에는 단지 고정관념을 바꾸고 싶었을 뿐이라고 한다. 화가가 외롭고 고독한 사람들만은 아니란 것을, 한국화가 매‧난‧국‧죽의 사군자만 있는 것은 아니란 것을 말이다. SNS에 작품을 올리고, 작가의 의도를 몇 자 끄적이던 게 시작이었다.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특유의 도발적인 발상과 표현 때문에 비판도 있었고, 악성 댓글도 심심찮게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끈기와 진정성은 결국 건강한 소통을 가능케 했다. 최근에는 SNS 소통을 통해 영감이나 작품 아이디어를 얻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김현정 작가가 ‘한국화를 대중적으로 전파하는 데 있어 선도적인 역할을 한다’고 평가받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노력의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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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정 작가의 작품, 결혼_육아전쟁(왼쪽)과 결혼_피로타

 

 

 


김현정 작가는 자신과 소통하는 대중들을 가장 든든한 우군으로 삼는다. 위기를 함께 헤쳐 나가는 동지이자, 응원과 격려를 통해 자신을 키워주는 후원자란 얘기다. 대중과 함께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과정을 ‘소셜 드로잉(social drawing)’이라 칭하며 즐긴다. 그리고 이제 그 소셜 드로잉에 한 챕터가 추가될 예정이다. 바로 희망브리지 희망대사로서, 재난‧재해 구호 분야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촉진시키는 활동이다.

“좋은 사람들이 만나면 좋은 일이 이뤄진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그걸 확인해왔고요. 처음 소통을 시작했을 때처럼 끈기와 진정성을 가진다면, 작은 목소리라도 꾸준히 전파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기대하세요, 미술과 재난‧재해 구호의 ‘컬래버레이션’

 

 

 


김현정 작가는 본격적인 희망대사 활동에 앞서 “재난‧재해 구호 분야에 대해 조금 더 배우고 싶다”고 말한다. 기관의 활동에 대해 많이 알면 알수록, 기관과 대중을 잇는 ‘브리지’ 역할의 임팩트가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직업 특성 덕분에 안전의식은 굉장히 투철한 편. 한지를 주로 사용하는 동양화가는 불과 물에 굉장히 예민하다고 한다. 김 작가는 “특히 화재의 경우 ‘노이로제’ 수준으로 신경 쓴다”면서 “방을 비울 때 모든 전기코드를 다 빼놓을 정도”라고 했다.

장기적으로 보면, 재난‧재해 구호 분야에 예술가의 역량을 덧댈 수 있는 포인트는 많다. 지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피해 지역이, 일본의 전통 문화예술 축제인 ‘마쓰리(祭り)’를 통해 부흥‧재생을 꾀한 것이 좋은 예다. 김 작가 역시 다양한 시도를 꾀해 볼 생각, 그중에서도 일견 가장 마음이 가는 부분은 미술을 활용한 위로와 치유다.

“복구와 재기는 다음 문제이고… 먼저 위로가 가장 필요할 것 같아요. 이재민들은 얼마나 놀라고 황망하겠어요. 미술에는 그런 힘이 있거든요. 특히 위안이 되고 안정이 되는 색상도 있고, 디자인도 있죠. 일단 그런 작은 부분부터,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나씩 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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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민들에게 미술을 통해 위로를 전달해드리고 싶어요.”

 

 



/사진: 김현정 아트크리에이티브센터


 

#동양화가 # 김현정 # 희망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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