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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브리지 스토리] 현장구호부터 성금배분까지, 재난구호 체계의 A to Z

2019.11.07

[희망브리지 스토리] 현장구호부터 성금배분까지, 재난구호 체계의 A to Z 

 

 

 

 

“예전에는 뉴스에서 태풍이나 지진 같은 재해 소식을 접하면, 그냥 ‘아유, 저거 어쩌냐…’ 하고 말았어요. 그런데 제가 겪어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재난‧재해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고, 누구나 이재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요.”

올해 초 강원 산불로 집이 전소되는 피해를 입었던 양 모씨의 말이다. 쓰디쓴 절망의 나날들을 뒤로 한 채, 일상으로의 복귀를 위한 잰걸음은 멈추지 않고 있는 양 씨. 최악의 순간, 그를 일으켜 세워 준 것은 우리나라 구호체계의 손길이었다. 양 씨는 “모든 게 잿더미가 됐을 땐 정말 앞이 캄캄했지만, 다양한 분들의 도움으로 힘을 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그런 온정들을 잊지 말고, 추후 재난성금 모금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참여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양 씨의 사례에서 보듯, 재난구호는 절망의 끝에서 자그마한 희망의 다리를 놓아주는 활동이다. 이러한 활동을 국내 법령에 의해 부여받은 단체가 바로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이하 희망브리지)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법정 모금 단체는 총 3곳. 사회복지공동모금회법(법률 제5960호)에 의한 공동모금회, 대한적십자사 조직법(법률 제14839호)에 의한 적십자사, 그리고 마지막으로 재해구호법(법률 제15022호)에 의한 희망브리지다.

그렇다면, 국내 유일의 법정 구호단체인 희망브리지는 재난‧재해가 발생했을 때 어떤 과정을 통해 도움의 손길을 전달할까? 현장구호부터 성금배분, 그리고 사후관리까지 이어지는 재난구호 체계에 대해 정리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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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 외경, 1961년 수재민들을 위한 ‘전국수해대책위원회’를 전신으로 하는 희망브리지는 58년 동안 국내‧외 재해 현장을 누빈 법정 구호단체다.

 

 

 


재해 현장과 해당 지자체를 연결하는 콘트롤 타워 

 

 

 

재난구호 프로세스에서 가장 앞단에 위치한 부서는 구호사업팀이다. 태풍이나 홍수 같은 자연재해의 경우 발생 이전에 이미 움직이는 경우도 있다. 사전에 미리 대처 방안에 대한 회의를 진행하고, 북부(파주)와 남부(함양)에 위치한 재해구호물류센터의 물품 수량 및 출고 준비를 체크한다. 피해가 예상되는 지역 지자체와의 소통도 이 때 이미 시작된다.

재난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지자체에서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희망브리지에 필요한 구호 물품을 요청한다. 통상 지자체는 관할 지역 재난 피해에 대비해 긴급 구호물품의 제작과 보관을 희망브리지에게 위탁하게 되는데, 발생 초기에는 이 물품들이 재난 지역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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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준비해놨던 구호 물품들은 재난 발생 시 구호 현장으로 전달된다. 

 

 

 

 

물건이 가면 사람도 따라 간다. 두 곳의 재해구호물류센터와 본부의 구호사업팀 인원이 급파된다. 현장 상황을 직접 체크한 이후, 피해의 장기화가 우려될 경우 현장구호 캠프를 운영한다. 초기 지원 물품의 관리, 이재민 대피소 설치, 세탁구호 차량 등 현장 설비 운영, 기업 및 개인의 모금 활동 연계 등이 캠프의 주요 임무다. 피해 현장에 사람의 손길이 대거 필요한 경우에는 여러 자원봉사 단체에 SOS신호를 보내기도 한다. 이광재 희망브리지 구호사업팀 과장은 “구호사업팀은 구호단체의 행동대장 역할”이라면서 “언제 어디서든 맞닥뜨릴 수 있는 게 재난인 만큼, 늘 긴장감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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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연평도 포격사건 당시 임시주택을 전달하고 있는 모습

 

 

 


정성스레 모아서, 공평하게 나누는 손길  

 

 

 

현장의 피해 상황에 따라 의연금 모금으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이는 피해 지자체와 희망브리지의 논의 하에 결정된다. 모금이 필요할 경우, 현장에 모금 사무실이 차려지고 희망브리지에서 모금 계좌를 개설한다. 협회의 한 관계자는 “모금의 진행 여부는 여론에 의해 크게 좌우되는 경향도 있다”고 귀띔했다.

희망브리지가 수재의연금을 모았던 전국의 방송‧언론사들이 모태가 되었다는 특성은 이럴 때 큰 도움이 된다. 한국신문협회나 한국방송협회의 협조를 통해 매스컴을 활용한 모금이 진행될 수 있는 것. 당연히 피해의 심각성과 사회적 여파에 따라 모금액은 크게 달라진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는 기부자에 대한 기부금 영수증 발행업무만 두 달 이상 소요될 정도로 기부 릴레이가 이어지기도 했다. 모금 활동은 모금 팀이 주도하지만, 협회 전 직원이 동원이 돼서 모금 활동에 협조하는 경우도 많다.

 

 

 

※ 재해 성금의 특성

지난 2006년 기부금품 모집이 ‘허가하는 법’에서 ‘등록하는 법’으로 바뀌면서 이제 누구나 등록만 하면 기부금을 모집하고 배분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자연재해 성금은 예외다. 국민이 재난 피해를 입은 이재민들의 구호를 위해 사용되길 바라며 보내준 의연금, 즉 자연재해 성금만은 재해구호법 하에서 허가제를 통해 유지될 수 있도록 남겨 두었다. 허가를 받은 단체만이 모금은 물론 배분의 총괄 권한까지 갖게 되고, 바로 그 역할을 희망브리지가 수행한다. 모아진 의연금은 배분위원회를 통해 정부가 제시한 기준(훈령)에 따라 공평하게 배분하도록 명시되어 있다. 의연금이 공적 부조의 성격이 강하며, 형평성을 갖지 못할 경우 사회 갈등이 유발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단 이에 해당하는 재난은 자연재해만을 의미한다. 인적 재난과 사회적 재난을 포함하는 ‘사회 재난’에 대한 성금은 의연금에 포함되지 않으며, 등록제를 통해 누구나 모금‧배분할 수 있다.

 

 

 

필요에 따라 현장 모금이나, 거리 모금이 진행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지정 계좌를 통해 모금이 이뤄진다. 희망브리지에서는 은행 망과 연결되어 있는 모금 전산 시스템을 통해, 실시간으로 모금 진행 상황을 체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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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산불피해 이웃을 돕기 위한 모금 활동 모습

 

 


모금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희망브리지 내부는 그야말로 비상 체제에 돌입한다. 가장 눈에 띄게 달라지는 풍경은 빗발치는 전화다. 기부자들과 피해자들이 뒤섞여 온갖 문의사항을 쏟아낸다. 허윤정 희망브리지 재난관리팀장은 “비상시에는 화장실도 가지 못할 정도로 통화량이 폭주한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모금이 진행되는 동안, 재난 피해 지역의 시‧군‧구에서는 피해 실태조사에 돌입한다. 이재민들이 해당 읍‧면‧동사무소에서 피해신고를 하면, 그 신고 내역이 맞는지 직접 확인해보는 절차다. ‘전파(全波)’ 혹은 ‘전소(全燒)’라고 신고한 집이 진짜 그 정도의 피해를 당했는지, 지침에 따라 확인을 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투명한 배분을 위해 가장 중요한 단계다. 허윤정 팀장은 “피해자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받은 피해를 실제보다 크게 느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특히 엄밀함이 요구되는 것이 현장 실태조사”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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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강원 산불로 전소된 주택 모습. 지자체 공무원들이 현장을 돌며 피해 규모를 직접 확인한다.

 

 


해당 지역 공무원들의 확인 절차가 끝나면 이는 모두 배분 전산시스템에 등록된다. 이재민의 신상정보와 함께, 피해 정도, 계좌번호 등이 모두 전산을 통해 공유되는 것이다.

배분의 마지막 단계는 바로 배분위원회다. 배분위원회 위원은 희망브리지의 이사회로 구성되는데, 언론사나 각계 시민단체 대표 22명으로 이뤄져 있다. 이 자리를 통해 모금 현황을 공유하고, 배분에 대한 의결을 거쳐 최종적인 배분 액수가 정해진다. 모금이 많이 됐다고 무작정 많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파와 반파 등에 대해 법령으로 정한 금액이 있어 전파세대 500만 원, 반파세대 250만 원을 넘지 못한다.

의연금은 앞서 소개한 배분 전산시스템을 통해, 희망브리지가 직접 이재민의 계좌로 입금한다. 원래는 피해지역 지자체로 의연금을 내려주면, 현지 공무원들이 이재민들에게 배분하는 절차였지만, 2008년부터 지금의 배분시스템이 도입되며 체제가 바뀌었다. 체제를 바꾼 이유는 역시 집행의 투명성 때문이다. 돈이 거치는 단계가 많다보면 중간에 사고가 날 가능성도 덩달아 높아진다. 협회의 한 관계자는 “지금의 시스템이 정착되기 이전에는 잘못된 배분으로 인한 환수조치도 많았고, 집행을 맡은 공무원의 착복으로 사회문제가 된 적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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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피해를 돕기 위한 특별 모금 생방송 장면

 

 


재난구호의 역사가 깊어지면서, 최근에는 재난구호의 개념과 방식도 조금씩 진화하고 있다. 당장 눈앞에 닥친 고통을 덜어주는 것은 물론,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재난의 후유증을 이겨내는 돌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난 10월 26일, 속초고등학교(강원 속초시) 체육관에서 열린 ‘산불피해 치유를 위한 주민화합 행사’가 좋은 사례다. 강원 산불 피해 복구를 위해 이미 336억여 원의 성금을 모아 전달했던 희망브리지가 반년이 지난 지금 이재민들과 다시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다. ‘속초시 영랑동지역사회보장협의체’를 중심으로 지역 내 민간봉사단체가 주도한 행사였다는 것도 큰 의미를 갖는다.

라정일 희망브리지 재난연구소 부소장은 “재난구호 선진국은 이미 중‧장기적인 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여러 시도를 펼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도 단기적이고 일회적인 지원을 넘어, 지역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장기적인 돌봄을 펼치는 모델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나가야 할 때”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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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금모금 # 배분 # 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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