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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家의 사람들]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무슨 재난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이광재 구호사업팀 과장

2019.10.24

[희망家의 사람들]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무슨 재난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이광재 구호사업팀 과장

 

 

 

 

"대피소가 차려진 체육관에 들어섰는데 섬찟할 정도의 적막이 감돌았어요. 못해도 300~400명이 들어차 있는 공간인데… 숨 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지더라고요."

 

 


이광재(40) 구호사업팀 과장이 회상하는 세월호 참사 현장의 첫인상이다. 베테랑 현장 활동가인 이 과장에게도 2014년 세월호 사고는 감당하기 힘든 비극이었다. 적막과 오열, 슬픔과 분노가 뒤섞인 그곳에선 모두가 조심스러웠다. 피해자 가족들이 끼니를 거르면, 같이 굶는 게 일상이었을 정도. 이 과장은 “당시 진도군 전체에서 밤에 술 먹는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고 귀띔했다.

법정구호단체인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이하 희망브리지)에서의 13년은 언제나 시원시원했던 그를 매우 조심스러운 사람으로 만들었다. 갑작스럽게 재난을 당한 피해자의 마음을 함부로 헤아릴 수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들의 고통, 원망, 짜증, 하소연을 감내하는 일이, 물품을 지원하고 현장을 복구하는 것보다 더 중한 일일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재난이 닥치면 쏜살같이 달려가, 그들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지고 있을 이광재 과장을 희망브리지 본사에서 직접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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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여름, 영등포 쪽방촌에 전달할 물품을 정돈하고 있는 이광재 과장(왼쪽)

 

 

 

 

취재현장을 꿈꾸던 청년, 재난현장을 누비다 

 

 

 

이광재 과장의 학창시절 꿈은 방송국 기자였다. 막연하게 꿈만 꿨던 것은 아니다. 4년여 동안 논술학원을 꾸준히 다녔을 정도로 치열하게 준비했다. 하지만 녹록치 않았다. 낙방을 거듭하면서 의욕과 자신감은 떨어져만 갔다. 그러던 중 우연히 발견하게 된 곳이 바로 지금의 직장, 희망브리지였다. 희망브리지는 1961년 전국의 방송사와 신문사 등이 힘을 모아 설립한 구호단체로, 현재도 언론사 임원들이 이사진의 주축이다.

“회사가 언론사랑 관계가 많아서, 막연히 비슷한 일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거죠. 혹시 들어가서 눈에 띄면 언론사로 갈 수 있는 길도 보일 것 같고.(웃음) 당시엔 그 정도로 절박했던 것 같아요.”

시작은 불순(?)했지만, 적응은 어렵지 않았다. 입사 초기 인사총무 업무를 맡은 덕분에 많은 직원들과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매사 조용하고 진지했던 기관의 식구들은 학창시절부터 ‘분위기 메이커’란 별명을 달고 살던 이 과장의 등장을 반겼다. 기관의 정체성인 재난구호 업무도 의외로 ‘맞는 옷’이었다. 이 과장은 “현장 활동은 늘 보람됐고, 고마워해주는 사람들을 보니 괜스레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마저 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렇게 방송기자의 꿈은 시나브로 옅어졌다. 올해로 14년차, 입사 초기에는 상상도 못했던 장기근속자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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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제14호 태풍 ‘덴빈’과 15호 태풍 ‘볼라벤’ 피해자를 위한 모금 생방송에 참여한 이광재 과장(왼쪽)

 

 

 


가장 먼저 달려가, 가장 늦게 철수하는 재난현장의 ‘야전사령관’ 

 

 

 

입사 이래 경영지원팀, 배분사무국, 모금팀 등을 두루 경험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곳은 현재의 자리인 구호사업팀이다. 구호단체의 구호사업팀은 재난이 발생하면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하고 가장 오래 머무는 자리. 해당 지자체와 손잡고 현장 활동을 진두지휘하는 ‘행동대장’의 역할도 수행하는 부서다. 당연히 출장과 외박도 잦다. 이 과장은 “일 년 중 50일 이상은 지방에서 일하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구호사업팀의 업무는 크게 재난발생 시와 평상시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재난이 발생하면 피해 지역 지자체를 통해 피해 상황과 지원 물품 규모를 발 빠르게 확인해야 한다. 물량 체크가 끝나면 희망브리지가 보유한 두 곳의 재해구호물류센터(경기 파주, 경남 함양)에 물품 출고를 알리고, 곧바로 현장으로 출동한다.

현장에서의 업무는 재난 상황과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현장구호 활동, 대피소 운영, 세탁차량이나 이동식 화장실‧샤워실 관리, 현장 모금 활동 등으로 나뉜다. 일주일이 될 수도, 수개월까지 이어질 수도 있는 업무. 이광재 과장은 “포항 지진의 경우 1년 동안 대피소가 운영되기도 했다”면서 “그럴 땐 기관 내 다른 팀원과 교대해가며 현장을 지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지자체와의 공조도 매우 중요하다. 지자체 공무원과 함께 현장 복구가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유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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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사업팀의 업무를 설명하고 있는 이광재 과장

 

 


재난이 발생했다는 것은 누군가 소중한 생명이나 재산을 잃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재난이 없을 평상시에 구호사업팀이 진행하는 ‘재난예방사업’은 더욱 값지다.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아우르는 재난안전교육 사업, 재난 위기가정을 발굴해 도배나 장판 등을 교체해주는 장‧단기 집수리 봉사, 재난 피해 가정에 모듈러 주택을 지원하는 기프트하우스 사업 등이 이에 포함된다. 이 과장은 “전통시장에 화재경보기를 달거나, 소방서 119안전센터에 심신안정실을 설치해주는 활동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다익손’ 재난현장에는 더 많은 손길이 필요합니다. 

 

 

 

재난의 가장 큰 특성은 ‘불확실성’이다. 언제든, 누구에게든 닥칠 수 있다는 얘기다. 이광재 과장은 “재난이라고 하면 뉴스에 나오는 큰 사건만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우리는 항상 재난을 맞닥뜨리며 살고 있다”고 했다. 겨울에 폭설과 한파, 봄철에 가뭄‧황사‧미세먼지, 여름에 집중호우와 폭염, 그리고 가을 태풍까지 이어지며, 사실상 연중 내내 ‘재난기간’을 겪어 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광재 과장이 틈 날 때마다 재난 예방사업에 매진하고 있는 이유도 그래서다. 최근에 가장 힘을 쏟고 있는 업무는 자원봉사단 리뉴얼이다.

현재 희망브리지는 8개 대학의 봉사 동아리와 협약을 맺고, ‘희망브리지 봉사단’이란 이름의 자체 자원봉사단을 운영하고 있다. 희망브리지의 대표 봉사활동 프로그램으로 현재까지 3000호가 넘는 재난위기 가정을 재단장시킨 ‘집수리로드’가 바로 이들과 함께 하는 활동이다. 이 과장은 대학생들과 수시로 소통하며, 재난 지역과 봉사자를 연결시키는 컨트롤 타워의 역할을 한다. 최근에는 사회인 버전의 ‘희망브리지 봉사단’도 구상 중이다. 학업 및 취업 등의 이슈 때문에 안정적으로 시간을 내기 어려운 대학생 봉사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용접이나 중장비 같은 특수기술을 보유한 사람들을 꾸려, 보다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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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수리로드에 참여한 이광재 과장(가장 왼쪽)과 대학생 봉사자들

 

 


우리나라의 구호 프로그램은 나날이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긴급구호키트의 내용물은 갈수록 실속을 더하고 있고, 세탁구호차량 및 이동식 샤워실과 화장실 등 이동식 시설도 이재민들의 불편을 크게 해소해준다. 지난 강원 산불 때 SNS 등에 소개되며 관심을 끌었던 대피소 칸막이는 “재난이 많은 일본의 대피소보다 훨씬 선진화된 시설”이라는 찬사까지 받았다.

하지만 이런 발전은, 기름유출 때 직접 기름때를 닦고, 지진 지역에서는 피해자들과 여진의 공포를 함께 느꼈던 현장의 경험, 그리고 평상시 준비와 관심의 토대 위에서 이뤄진 것이다. “재난은 평상시에 더 관심을 가져야한다”는 이 과장의 신조는 그를 재난 상황이 없을 때 더 바삐 움직이게 만든다.

 

 


 

#구호 # 재난 # 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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