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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브리지는 지금] 안전, 머리 아닌 몸으로 익혀야… ‘어린이 재난안전 체험학습’을 가다.

2019.09.30

[희망브리지는 지금] 안전, 머리 아닌 몸으로 익혀야…

‘어린이 재난안전 체험학습’을 가다.

 

 

 

 

"식탁 다리를 꽉 잡아요. 얼굴 들어서 밖에 보고!"


주은하 안전선생님의 외침에 아이들이 어렵사리 고개를 든다. 상하좌우로 덜컹거리는 방 안에서 식탁 밑에 웅크려 있는 아이들의 모습엔 당황하는 빛이 역력하다. 조금 전 “재미있겠다”며 호기롭게 체험시설에 오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갑자기 방 옆의 벽면이 ‘쿵’하는 소리를 내며 무너지는 효과까지 연출되자, 견학 중이던 70여명의 아이들도 덩달아 소리를 지른다. 올해 처음 선보인 지진체험교육은 실제 지진상황을 방불케 할 정도의 몰입도였다. 일반 가정집과 똑같이 꾸며놓은 공간은 최대 진도 6까지 체험할 수 있는 특수시설이다. 체험을 마친 양유주(12‧송양초) 양은 “영상을 통해 행동하는 요령을 다 배우고 왔는데 막상 바닥이 흔들리기 시작하자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났다”면서 “지진의 위험성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다”며 혀를 내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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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건립돼 올해부터 어린이 재난 안전교육에 활용되고 있는 지진체험관의 모습

 

 


지난 9월 25일,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이하 희망브리지) 재해구호물류센터가 모처럼 소란스러워졌다. 송양초등학교(경기도 의정부시) 5학년 3개 학급, 72명의 학생들이 ‘어린이 재난안전 체험학습’에 나선 것. 희망브리지 주관, 현대글로비스 후원으로 지난 2015년부터 진행되고 있는 이 프로그램은 해마다 서울‧경기‧인천 등의 초등학교에서 활발히 참여하는 희망브리지의 대표적인 교육사업으로 지금까지 4천807명의 학생들이 참여했다. 이날 학생들을 인솔했던 정석환(43) 송양초 교사는 “올해로 벌써 세 번째 참여하는 프로그램”이라며 “책보다 훨씬 생생하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어서 매번 아이들의 호응도가 높다”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의 정수(精髓)는 역시 실습과 체험 위주로 꽉꽉 채워진 커리큘럼이다. 총 4시간이 소요되는 교육 중에 이론을 배우는 시간은 가장 기초적인 것을 익히는 초반 30분짜리 영상교육이다. 교육을 담당하는 엄선미 희망브리지 간사는 “아이들은 집중도가 약하기 때문에 이론 수업이 조금만 길어져도 교육효과는 크게 떨어진다”면서 “교육의 목적이 재난 발생 시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것에 있는 만큼 최대한 많은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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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체험교육에 나선 친구들을 응원하는 학생들(왼쪽)과 실제 교육 장면

 

 


오전 10시, 동영상을 통해 각각의 재난 상황에 대한 행동요령을 숙지한 아이들은 화재 대피 훈련으로 본격적인 교육을 시작했다. 사전에 배운 대로 입과 코를 막아 질식 위험을 줄이고, 최대한 자세를 낮춘 상태에서 기민하게 빠져나오는 게 관건인 훈련. 아이들은 앞서 익힌 내용을 떠올리며 차례차례 자욱한 연기를 뚫고 나왔다. 이 교육을 담당하는 서인숙 안전선생님은 “초등학교 저학년인 경우 안전을 위해 상황을 많이 축소하는데, 오늘 온 학생들은 고학년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상황과 비슷할 정도로 강도를 올렸다”고 귀띔했다. 훈련을 마친 양현세(12‧송양초) 군은 “처음에는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무서웠지만 배운 대로 해보려고 노력했다”면서 “평소엔 불이 났을 때의 상황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 간접적으로 체험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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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대피 훈련 모습. 교육에 사용되는 연기는 실습용으로 인체에 무해하다.

 

 


화재 대피 체험을 마친 후엔 견학 시간이 이어졌다. 교육 장소가 법정구호단체인 희망브리지의 물류센터라는 점을 십분 활용한 교육. 이곳에는 재해 현장의 청결함을 지켜줄 세탁구호차량, 편안한 보금자리가 되어줄 임시주거시설, 재난피해자들에게 제공될 구호품 등이 모두 구비돼 있다. 엄선미 간사는 “이런 물품들을 직접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재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효과가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시주거시설 내부를 살펴보던 박민승(12‧송양초) 군은 “이렇게 널찍하고 좋은 집이 멀리 재난현장까지 옮겨진다는 게 너무 신기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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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품을 살펴보는 학생들(왼쪽)과 임시 주거시설의 견학 모습

 

 


점심시간 이후에는 교육의 하이라이트인 4개조 순환 체험교육이 실시된다. 모두 4개 조로 나뉘어 소화기실습, 심폐소생술 실습, 하임리히법 실습, 서바이벌&재난약자 체험이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더 깊이! 더 힘차게! 우리 가족이 위급한 상황에 처했다고 생각하고 해보는 겁니다!”

 


심폐소생술을 맡은 권정민 안전선생님이 목청을 돋우며 아이들의 식곤증을 쫒는다. 학생들은 ‘1분 100회’라고 알려준 숫자를 속으로 헤아리며, 있는 힘껏 애니(심폐소생술 교육용 인형)의 가슴을 압박했다. 같은 시간 아래층에선 소화기 실습 체험이 한창이다. 소방관 복장을 갖추는 사이 한 학생이 “너무 더운데 그냥 걸치기만 하면 안돼요?”라며 투정을 부린다. 교육을 맡은 서인숙 안전선생님은 “소방관 아저씨들은 그 더운 옷을 입고 훨씬 뜨거운 불구덩이 속에 들어가죠. 그분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불평할 수 있겠어요?”라고 일침을 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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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조 순환 체험교육.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심폐소생술, 서바이벌&재난약자 체험, 하임리히법, 소화기실습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이 날 교육은 오후 2시가 넘어서야 종료됐다. 교육을 마친 정석환 교사는 “학교에서도 소방서와 연계하고 외부강사를 초빙하기도 하는 등 안전과 관련된 교육이 의무적으로 진행되기는 하지만 워낙 학생 수가 많아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이어 “오늘처럼 필요한 것들이 한데 갖춰져 있는 환경에서 다양한 체험을 밀도 있게 해보는 경험은 유사 시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희망브리지의 재난안전 체험학습은 초등학생의 신청을 받아, 전문적인 교육을 수료한 안전선생님의 지도하에 이뤄지고 있다.

 

 

 

 

#어린이안전체험 # 화재 # 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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