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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때·오늘·그일] 세월호 참사 5주기, 진정한 반성은 재발 방지 뿐
등록일 2019-04-15

2014416일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못내 죄스럽고 아픈 날이다. 미수습자와 실종자를 포함한 희생자 304, 그중 미성년자 250. 역사상 최악이자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될 참사가 일어났다. 수많은 영혼이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사라져갔고, 육지 위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마음 한 구석에 돌을 얹은 채로 오늘날을 살고 있다. 그 돌의 무게를 줄여보고자, 우리는 지금까지 책임자를 단죄하고 안전사고 시스템을 손질하며 반성문을 써 왔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같은 일이 다시금 벌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참사를 직시하고 냉철하게 바라보는 것부터다.

 

 

거꾸로 침몰한 세월호의 참담한 모습(사진: BBC)

 

 

 

 

| 우리의 시계는 여전히 2014416일에 멈춰 있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416. 인천항을 출발해 제주로 향하던 청해진해운의 여객선 세월호가 전라남도 진도군 관매도 부근 해상에서 돌연 침몰했다. 전체 승객 476명 중 304명이 죽거나 실종됐고, 여기에는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 250명이 포함돼 있었다.

 

침몰 원인은 바닷물이 세차게 휘몰아치는 맹골수도(孟骨水道, 전남 진도군 맹골도와 거차도 사이를 잇는 바닷길)에 세월호가 휩쓸린 것이지만, 국내 해상 사고 역사를 바꿀 만큼 큰 인명피해가 발생했던 것은 모두 사람의 책임이었다. 청해진해운 일가의 부도덕한 경영과 부실한 선박 관리, 정부의 2008년 선박연령 규제완화, 선장과 선원들의 판단 착오와 늑장 대응, 컨트롤타워의 대응 부실 등이 한 데 뭉쳐 침몰하던 배를 바다 속으로 밀어 넣었다.

 

사고 발생 당시 선장은 승객들에게 퇴선유도를 하는 대신 속옷 바람으로 가장 먼저 탈출했고, 승조원들은 제대로 된 안내 방송을 하지 않았다. 청와대와 정부는 진실에 다가가기보다 과실을 숨기는 데 급급했고, 해경은 제대로 된 매뉴얼도 없이 우왕좌왕했다. 엎친 데 덮친 격 언론은 전원 생존이라는 희대의 오보로 혼란만 가중시켰다. 이 모든 과오는 매스컴을 타고 온 국민들에게 여과 없이 전해졌다. 희생자의 가족을 포함해서 말이다.

 

 

 

세월호 구조 현장(사진: The Atlantic)

 

 

사고의 여파는 너무 컸다. 온 나라가 슬픔과 분노로 가득 채워졌다. 이후에는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 식의 처벌과 대책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세월호 항해사와 조타수, 기관사 등 선박 운항과 관련된 직원과 청해진해운 관계자들이 구속됐고, 해경 책임자도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정부는 국민안전처를 신설하고 해경을 해체하는 등 부처를 정비했다. 하지만 이 과정이 모두 철저한 조사의 결과라고 보기는 힘들다.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국민 정서에 휘둘린 대처라고 보는 시각도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사고의 해결보단 정쟁으로 풀려갔다. 결국엔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까지 이뤄졌다. 이 같은 혼란이 몰아치는 가운데, 최근 몇 년 간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건설적인 논의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국회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각종 세미나와 토론회가 열렸지만 의미 있는 결론은 나오지 못했다.

 

 

 

 

| ‘모두 희생시키느냐, 모두 살려내느냐키를 쥔 것은 결국

 

 

5년이 지났다. 이제는 이 참사를 보다 냉정하게 바라볼 때다. 사실상 해상 사고의 위기 대처 매뉴얼은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따라서 남은 건 선장의 빠른 상황 판단과 위기 대처 능력, 그리고 선원들의 일사불란한 실행력이다.

 

역사상 가장 처참했던 해상 사고를 한 번 살펴보자. 19871220일 오전, 필리핀 여객선 도냐 파즈호는 레이테 섬을 출발해 수도 마닐라를 향하던 , 유조선 벡터호와 충돌한다. 충돌 후 유조선에서 가솔린이 새어나와 불이 붙었고, 두 선박은 불길에 휩싸였다. 엄청난 불길에 인근 바닷물의 온도가 치솟으면서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총 사망자는 무려 4375. 전 세계를 통틀어 비() 전시 상황에서 일어난 선박 사고 사망자 수 1위다. 탑승 정원은 고작 1500명 가량이었지만 무리한 입석표 판매로 인해 3배 가까운 희생자가 발생했다. 이 사고의 피해를 키운 것 역시 사람이다. 선장을 비롯해 모든 승조원들이 술에 잔뜩 취해 있었고, 구명조끼가 들어 있는 창고는 자물쇠가 잠겨 있었다. 

 

 

역사상 최악의 해상사고를 당한 도냐 파즈호(사진: Elite Newsfeed) 

 

 

 

비슷한 사고지만,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낸 사례도 있다. 20135, 2200여명의 승객과 700여 명의 선원을 태운 미국 로얄 캐리비안여객선에도 갑작스레 화재가 발생했다. 하지만 선원들은 당황하지 않고 매뉴얼에 따라 승객들에게 구명조끼를 입히고 서둘러 갑판으로 대피시켰다. 2200명이 넘는 승객이 질서정연하게 선원들의 안내를 따랐고, 차례로 구명보트에 옮겨 탔다. 이 사고에선 단 한 명의 희생자도 나오지 않았다.

 

2009년 일본 여객선 아리아케호미에현 앞바다에서 갑자기 균형을 잃고 전복됐다. 하지만 배가 기우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챈 선장은 빠른 상황 판단으로 선원들을 갑판으로 위치시켰고, 선원들은 소방호스를 로프 삼아 바다에 빠진 승객들을 갑판으로 끌어올렸다. 이 사건 역시 인명 피해는 전무했다.

 

세월호와 도냐 파즈호처럼 피해가 극심했던 사고는 결국 책임감의 부재가 낳은 아픈 결과다. 구조 책임을 가진 선장·선원과 해경, 그리고 정부의 컨트롤 타워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것이 맞물려 엄청난 희생을 야기했다. 거시적인 관점으로 안전사고 시스템을 정비할 책임, 그리고 그 가이드라인에 따라 충실히 움직여야 할 선원과 승객으로서의 책임. 그런 책임들이 만난다면 최악의 경우에도, 최선의 결과를 기대할 있는 것이다.

 

 

 

 

| 2의 세월호가 나오지 않기 위해서는 

 

 

세월호 참사 이후 대한민국에서는 많은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 민간 해운에 대한 규제와 감시가 강화되었고, 해상교통 인프라도 상당부분 개선됐다. 여객선 운영체계와 안전 관리 역시 상시적으로 점검 중이며, 해상 사고의 세부적인 매뉴얼도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 분향소를 찾은 조문객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많다. 선박의 안전성을 점검하는 선박검사 대행제도는 아직도 그대로다. 여기에 여객선과 같이 많은 승객이 탑승하는 유람선은 해운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여전히 노후 선박들이 위험을 안고 물 위를 누비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안전사고와 관련해 위험한 작업은 외주화를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도맡고 있고, 국가에서 관리 책임을 맡는 선박공영제는 도입조차 되지 않았다. 게다가 일선 구조 업무를 맡은 해경의 구조장비 점검과 예산에 대해 지속적인 감시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아직 사그라지지 않았다.

 

아울러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 못지않게 사고 현장에서의 행동요령을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모든 사고는 예방이 최선이지만, 일단 발생하고 난 이후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은 현장 요원들의 기민한 조치이기 때문이다. 선원들은 신속히 구조를 요청하는 동시에 사고 상황에 맞게 승객을 대피시킬 수 있는 행동양식이 몸에 배어 있어야 한다. 승객 역시 이를 믿고 따르며 질서를 지킬 때 생존율은 더욱 높아진다.

 

끝으로 일선 학교에서의 안전 교육도 실정에 맞게 이뤄져야 한다. 실제로 유럽 선진국들의 경우, 초등학교 과정에서부터 심폐소생술과 수영을 필수로 가르친다. 특히 이들이 배우는 수영은 생존과 인명구조를 위한 교육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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