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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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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희망브리지 사진첩] 그 시절, 물난리가 우리를 흔들었다.
등록일 2019-02-08

 

 중부지방 호우피해로 1600여 명의 인명피해와 132천 명의 이재민 발생」

-1964913

 

 

우리는 크고 작은 재난·재해에 둘러싸여 살고 있습니다. 어느 곳에선 집채만 한 소용돌이가 마을을 통째로 날려버리고, 또 어느 곳에선 타들어가는 듯한 폭염으로 열사병에 걸린 이들이 속출하기도 합니다. 그리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길가다 머리 위로 화분 하나가 떨어지거나, 비오는 날 거칠게 질주하는 트럭이 튀기고 간 흙탕물을 뒤집어쓰는 일도 개인적으론 재해요, 재난일 겁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언제, 어떤 일을 계기로 재해나 구호와 같은 단어를 접하게 되었나요? 저마다 사연은 다르겠지만, 55년 전 찍힌 이 한 장의 사진은 그 모든 출발점은 물난리였다고 말해주는 듯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돈을 모아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자는 활동, 즉 민간모금 운동이 일어난 건 19207월이었습니다. 계속되는 폭우로 한강이 범람했고, 용산을 비롯한 인근 일대가 모두 물에 잠기면서 주민들의 피해가 극심했죠. 하지만 당시 정부의 역할을 수행했던 조선총독부의 대비책은 미미했습니다. 급기야 그해 4월 창간한 동아일보가 국민들의 성금을 모으고, 의료반을 파견하는 활동에 나섰죠. 이는 조선일보 등 다른 언론사의 모금운동에 불을 지폈고, 이런 활동이 이어지며 재난을 당한 이웃을 돕는 운동이 우리의 문화로 정착되어 갔습니다. 즉 재해와 구호의 시발점이 물난리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1961713일 설립된 국내 최초의 민간모금기구의 명칭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당시 기구의 이름은 전국수해대책위원회였습니다. 수해가 재해의 동의어로 여겨졌다고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죠. 이 기구는 훗날 전국재해대책위원회, 전국재해대책협의회로 개칭되었고, 바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가 됩니다. 1980~1990년대 성금 모금의 대명사가 수재의연금이었다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갈수록 세상은 복잡해지고, 환경은 황폐해져갑니다. 그 여파로 다양한 재해가 너무나 빈번하게 발생하고, 여기에 인적재난, 사회재난의 범주까지 넓어져 그 종류를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운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쯤 되니, 수해를 재해의 전부라 여기고, 물난리 피해만은 막아보자 다리를 걷어 부치고 동참했던 그때 그 시절의 소박한 선의(善意)가 그리워지기까지 합니다.

 

 

※희망브리지 사진첩은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본사 1층 복도에 전시된 사진을 하나씩 들여다보며, 사진 속 이야기와 사진 너머의 사연을 전하는 포토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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