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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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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 스토리] 우리나라 재해구호 이야기 - ①‘수재의연금’을 기억하시나요?
등록일 2019-01-21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여름철만 되면 방송과 신문에서 ‘수재의연금을 모집합니다’란 문구를 쉽게 볼 수 있었죠. 뉴스나 교양 프로그램 방송 화면 하단에 ‘OO실업 임직원 500만원, △△동 □□유치원 원장과 원우들 100만원’ 이란 자막이 나왔던 모습도 기억하실 겁니다. 방송국이 위치한 여의도 인근에는 직접 성금을 내기 위해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의 긴 줄도 자주 접할 수 있었고요.

 

 

고사리 손으로 성금을 내고 있는 어린이. 예전 TV에서 자주 봤던 모습이다.(사진:희망브리지)

 

 

1959년 태풍 사라호가 휘감고 간 한반도는 폐허 그 자체였습니다. 1961년 수재민들을 위한 모금운동이 시작되었고,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이하 희망브리지)의 전신 기관인 전국수해대책위원회가 탄생했습니다.

 

하지만 희망브리지가 탄생하기까지 다음과 같은 스토리가 있습니다. 희망브리지 설립 전에는 수재의연금 모금을 진행했던 전국의 언론사들이 이 돈을 직접 배분했습니다. 좋은 뜻으로 시작된 일, 끝까지 좋게 마무리되면 좋았겠지만 문제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받은 사람이 또 받는, 이른 바 중복수혜 논란이 발생하는 등 기부금을 처리하는 단계에서 몇 가지 불미스런 일이 제기됐죠.

 

이에 전국의 언론사와 사회단체 등이 함께 재난 성금을 관리하는 창구를 일원화하자는 데 뜻을 모았습니다. 그 결과 1961년 탄생한 것이 지금의 희망브리지이죠. 어떤 재난이 발생했을 때 그에 대한 지원이 지역적으로 편중되거나, 지원을 받아야 할 곳에서 지원을 받지 못하거나, 중복으로 지원되는 문제를 막기 위해 모금을 하던 언론사들이 모여 만든 단체입니다.

 

 

1961년 희망브리지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재난 성금은 모금을 진행하던 언론사들이 직접 배분했다.

(사진: 희망브리지)

 

 

일반 기부금과 차원이 다르다!

‘모금 허가제, 성금 배분 일원화’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죠. 지난 2006년, 기부금품 모집이 ‘허가하는 법’에서 ‘등록하는 법’하는 법으로 바뀝니다. 등록만 하면 누구나 기부금을 모집할 수 있게 규제가 완화된 것이죠. 하지만 국민이 재난구호를 위해 쓰라고 모아준 의연금, 즉 재난성금은 재해구호법에 남겨두어 허가제를 유지하도록 했습니다.

 

 

재난성금은 재해구호법이 정한 범위 안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사진: 희망브리지)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음의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프랑스는 한때 국가적 재난 시 국민이 자발적으로 내는 의연금을 누구나 모집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러자 전국에서 2000여 개 기관이 난립했죠. 그러다보니 얼마를 모았는지, 어디에 썼는지 알 수 없는 지경이 돼버리고 맙니다. 결국 모금액 기준 상위 50% 기관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협회를 만들고 배분 창구를 일원화하면서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였습니다.

 

이러한 폐해를 막고자 우리나라는 재해구호법에 등록청의 허가를 받아 모집하고, 모은 의연금은 배분위원회를 통해 정부가 제시한 기준(훈령)에 따라 공평하게 배분하도록 명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희망브리지의 이사회가 배분위원회를 맡도록 되어있죠. 이는 전국적으로 광범위한 피해를 끼치는 자연재난의 특성을 고려할 때, 의연금 배분의 형평성 확보가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재난피해 이웃을 돕기 위한 방송 모금 현장(사진:희망브리지)

 

 

재난성금은 동일 재난에 공평 지원이 원칙!

기부자 의사 보다 형평성을 지향하는 이유

 

그동안 재난성금은 특정지역, 특정 사업을 지정하는 기탁을 지양했습니다. 동일한 재난피해에 지역적 편중, 지원 누락, 중복 지원 등의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였죠. 즉, 진짜 필요한 곳에 쓰이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염려한 것입니다. 언론의 관심이나 기업의 사익, 정치적인 의도에 의해 재난성금이 특정 지역에 몰리고, 그에 따른 구호 소외 지역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기부자의 요구가 다양해졌습니다. 그래서 기부금의 일정 부분을, 기부자의 의사대로 돕고 싶은 곳에 쓸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되었습니다(의연금품관리운영규정). 하지만 지정기탁 의연금 역시 재해구호법에 따라 지역 차등 없이 공평하게 배분되는 구호금에 우선 사용해야 합니다. 이는 위에서 짚은 이유들 때문이겠죠?

 

 

‘사랑의 열매’는 원래 재해민 구호를 위한 상징이었다?!

 

"재해민을 구호하는 사랑의 열매를 달읍시다." (사진: 희망브리지)

 

 

겨울철만 되면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불우이웃의 상징 ‘사랑의 열매’. 사실 사랑의 열매의 기원은 이렇습니다. 1961년부터 1965년까지 연평균 18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는 상황이 지속되어 막대한 구호비용이 필요했습니다. 따라서 재해에 앞서 미리 기금을 조성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해졌죠. 또한 재해 발생 후 모금운동을 전개함에 따라 구호기간이 2~3개월이나 소요되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늦장 구호에 대한 이재민들의 불편과 불만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에 사전 모금제를 검토하게 되었는데, 희망브리지가 주목한 것이 바로 일본의 ‘아까이히네(붉은 깃)’이었습니다. 일본은 ‘아까이히네’를 제작해 국민들에게 판매함으로써 사회복지기금을 마련했는데 이를 모델로 ‘사랑의 열매’를 창안해낸 것이죠. 각 열매는 ‘사랑, 구호, 봉사’를 상징했습니다. 석회석 재질의 빨강, 노랑, 파랑의 성냥개비와 같은 세 개의 열매를 한데 묶은 형태에서 출발해 1969년 빨간 플라스틱으로 만든 새로운 사랑의 열매를 탄생시켰습니다.

 

 

각 열매는 '사랑, 구호, 봉사'를 상징한다. (사진: 희망브리지) 

 

재해민을 돕기 위한 ‘사랑의 열매 달기 운동’은 한 개당 10원 정도의 성금으로 사랑의 열매를 구입해 패용하는 것인데, 민·관·기업 등의 적극적인 협조에 힘입어 범국민적인 모금운동으로 발전해나갔습니다. 현재 ‘사랑의 열매’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설립 이후부터 불우이웃 구호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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