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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캠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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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 스토리] 산골짝 등대지기를 만나다_② 재난의 재구성, 태풍 콩레이가 지나간 하루
등록일 2019-01-24

태풍, 지진, 해일, 홍수 같은 자연재해들은 우리 곁에 그리 길게 머물지 않습니다. 짧게는 한나절 정도 스치고 지나갈 뿐이죠. 하지만 남겨진 자들이 짊어져야 할 슬픔은 너무 길고, 복구와 재기를 위한 과정은 지난하기만 합니다. 구호현장에서 일하는 활동가들도 마찬가지죠. 재해 소식과 현장 피해 상황을 발 빠르게 전하는 매스컴의 관심이 사그라질 때쯤, 그들의 장도(長道)는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실제로 2017년 11월 중순에 발생한 포항 대지진 현장에 투입됐던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이하 희망브리지)의 세탁구호 활동은 지난 연말께가 되어서야 마무리됐습니다.

 

 

"재난 뉴스가 사람들 뇌리 속에서 사라질 때도, 우린 여전히 사투를 벌이고 있어요"

 

 

이기문(45) 함양 재해구호물류센터장(이하 센터장)이 재해구호 활동을 ‘장거리 마라톤’에 빗대는 이유입니다.‘더 이상 구호품을 보낼 필요가 없을 때’까지 이르는 길은 그 정도로 멀고 험하죠.

 


구호물품이 필요한 분들이 계신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갑니다! (사진: 희망브리지)

 

이 센터장은 가장 최근 사례로 태풍 콩레이 피해 현장을 꼽습니다. 지난해 12월 5일, 롯데제과에서 기부한 과자세트가 콩레이 피해 현장에 전달됐는데, 이것이 이 센터장이 현장으로 보낸 마지막 구호 물품이었죠. 10월 초 피해를 접하자마자 응급구호세트 500개를 급파한 지 꼬박 두 달 만의 일입니다. 아무리 긴 마라톤도 시작은 있는 법입니다. 1천명이 넘는 이재민들이 졸지에 집과 삶의 터전을 잃었던 바로 그날, 함양 재해구호물류센터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그 숨 가빴던 하루를, 이기문 센터장의 시점으로 재구성해봤습니다.

 


동틀 무렵의 함양 재해구호물류센터. 겹겹이 쌓인 구호품들의 행선지가 정해질 하루가 곧 시작된다.

 

 

 

“휴” 쓸어내린 가슴에서 “철렁” 내려앉은 가슴으로…

 

며칠 전부터 불길했다. 괌 쪽에서 발생한 태풍 하나가 세력을 키우며 일본 쪽으로 향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부터다. 일본 기상청은 “중형에서 대형으로 몸집을 불린 매우 강력한 태풍”이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오늘, 10월 5일. 예보대로라면 한반도를 지나간다.

 

이맘때쯤 오는 태풍은 비도 많이 뿌리고, 바람도 거셀 텐데…

 

‘구호’를 다루는 직업상 이런 때가 가장 얄궂다. 언제 올지, 어디서 올지 뻔히 알지만, 뭔가 강력한 대비책은 딱히 없는. 그래서 괜스레 신경만 날카로워진다.

 

어젠 ‘혹시나’하는 마음에 창고의 물품을 한 번 더 들여다봤다. 사용할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지인들과 조그마한 모임도 있었지만, 술은 입에도 대지 못했다. 자꾸만 휴대폰으로 눈길이 쏠리는 통에 자리를 오래 지키지도 못했다.

 

*오전 8시.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태풍의 진행 경로를 다시 살폈다. 현재 예상대로라면, 일본 열도 아래에서 시계방향으로 반원을 그리며 한반도를 돌아나간다. 이미 제주도에선 엄청난 양의 비가 뿌려지고 있다. 예상대로다. 최소한의 대비가 필요했다. 일단 위급 상황 시 구호물품이 재빨리 나갈 수 있게 차량과 기사들을 대기시켰다.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인 피해가 발생하게 되면, 그조차도 어려워 질 수 있다.

 


제25호 태풍 콩레이의 이동 경로(사진: 네이버 날씨)

 

*오전 10시. 태풍이 우리 땅에 상륙했다. 상황 파악이 무엇보다 중요한 때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를 따라 각 지자체에 연락을 시도했다. 전국 108개 시·도·군의 구호물품을 도맡아 관리하며 각 도청 담당자와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았던 경험은 이럴 때 꽤 도움이 된다. 태풍을 처음 맞이했던 전남 지방이 가장 먼저다. 그 다음은 부산, 양산, 울산, 경주, 영천, 포항… 태풍의 행로를 따라 전화기 너머 상대방의 동네가 시시각각 바뀐다.

 

*오후 2시. ‘아, 점심을 걸렀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쯤 1차 상황 파악이 종료됐다. 강풍을 동반한 비가 쏟아지곤 있지만, ‘아직까진 괜찮다’라는 것이 중론이다. ‘후…’ 며칠이나 축적된 긴장감이 스르륵 빠져나가니 맥이 풀린다. ‘스탠바이’시켰던 차량과 기사에게 ‘비상해제’ 신호를 준다. 슬쩍 점심 고민도 해본다. 바로 그때, 새로운 소식을 전하는 뉴스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경북 쪽이 심상치 않다’는 소식. ‘경북? 경주, 포항은 아까 여러 번 확인했는데? 혹시… 영덕?’ 사실 평소 경북, 특히 영덕 쪽은 태풍 피해를 잘 받지 않는 곳이다. 워낙 끝자락이라, 태풍이 쇠해져 빠져나가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영덕군청에 전화를 건다. 담당자는 전화를 받자마자 “다시 전화 드리겠다”며 다급히 전화를 끊는다. 지난 며칠간 느꼈던 불길함의 정체가 그렇게 실체를 드러냈다. 본능적으로 집에 전화를 건다.  

 

“나 오늘 퇴근 못할 것 같아.”



태풍 콩레이가 휩쓸고 지나간 경북 영덕 지역의 모습

 

 

 

밤을 밝힌 창고의 불빛, 이재민들의 어두운 얼굴도 밝혔으면…

 

*오후 2시 반, 전화벨이 울린다. ‘다시 전화 한다’던 영덕이었다. “여기 잠겼어요. 확인되는 건 200가구 정도고요” 30분 후 다시 온 전화에서 그 수는 500가구로, 또 한 시간 후엔 700가구로 늘었다. 최종적으론 1000가구로 파악됐다. 도청에선 “하필 바닷물이 만수 때 비가 쳐들어와서 빗물이 좀처럼 빠지지 않는다”고 했다.

 

*오후 5시. 영덕군청과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구호물품의 경우, 초기 수량 파악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자라면 구호활동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넘치면 지자체에서 보관하기가 까다롭다. 현재 군청에 보관하고 있는 구호품은 약 50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양이었다.

 

*오후 7시. 최종적인 구호물품의 물량이 결정됐다. 가장 기본이 되는 응급구호세트는 500개가 먼저 나간다. 여기에 모포 960장, 수건 1200장, 화장지 2400개, 생수 1536병이 포함됐다. 그 사이 차량도 다시 수배했다. 오후에 해제 신호를 받고 뿔뿔이 흩어진 기사들을 다시 모으는 건 꽤 번거로운 작업이다.

 


경북 영덕에 지원된 응급구호세트의 구성. 1세트는 1인용이다.

 

이후부턴 체력전이다. 1000여 명에 달하는 이재민들을 위한 물품의 상차(上車·차에 짐을 싣는 것) 작업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하지만 재기를 위한 이재민들의 노고엔 비할 바가 없다. 함양 재해구호물류센터 창고는 그렇게 밤새도록 불을 밝혔다.

 


함양 재해구호물류센터의 구호물품 상차(上車) 업무(사진: 희망브리지)

 

 

 

에필로그; 흙탕물 속에서 희망을 보다

 

문제의 하루가 지나고 찾아온 새벽. 추가 물품 파악과 세탁 구호차량 같은 장비 파견 업무를 이어가야 하는 이기문 센터장을 대신해, 함양 재해구호물류센터의 윤진혁 사원이 피해 현장에 투입됐습니다. 희망브리지에 입사한 지 채 한 달도 안 됐던 신입 직원은 난생 처음 접하는 태풍 피해 현장에 대해 이렇게 표현합니다.

 

태어나서 그런 처참한 광경은 처음 봤습니다.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강구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내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흙탕물을 뒤집어 쓴 채 아무렇게나 굴러다니고 있었어요. 시장에서 파는 물건부터, 시장 쪽방에서 나온 가재도구나 심지어 가구 같은 것들도 뒤섞여 있었죠. 솔직히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런 곳이 과연 복구가 될 수 있을까, 여기 살 던 분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었어요.”

 

그가 본대로 경북 영덕은 태풍으로 인해 큰 상처를 떠안았습니다. 주택, 농경지, 공공시설이 물에 잠기며 삶의 근간마저 흔들렸죠. 하지만 그의 우려와는 달리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전국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줄을 이어 참여했고, 희망브리지를 비롯한 여러 단체들의 모금활동도 이어졌습니다. 희망브리지는 지난해 11월 19일까지 22억 6천만원이 넘는 시민들의 성금을 모아 피해지역에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재해를 대하는 지자체의 자세도 180도 달라졌습니다. 피해발생 후 전문가를 통해 개선복구 로드맵을 기획했고, 1천억 원이 넘는 재해복구 재원도 확보했습니다. 태풍 콩레이 피해원인 분석, 자연재난 백서 제작 등도 추진 중이고요. 시련을 이겨내고, 재해에 강한 지자체로 거듭나기 위한 첫 걸음에 나선 것입니다.

 


바쁜 업무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이기문 센터장(오른쪽)과 윤진혁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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